▲정도전의 집이 있었던 종로구청 주변. 정도전의 호를 딴 삼봉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김종성
조선, 자주파인 정도전 잃고 무역 특혜 얻었다그런데 정도전의 요동 정벌은 이방원의 쿠데타로 좌절되고 말았다. 사대파인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고 권력을 잡자, 명나라에서는 무역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나왔다. 조선에 대해서만큼은 과감한 무역특혜를 주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결국 명나라는 정도전이 제거된 지 2년 뒤인 1400년에 과감한 무역특혜를 조선에 제공했다. 조선에 대해서만큼은 이례적으로 1년에 3회의 조공을 인정한 것이다. 그만큼 명나라가 무역적자를 감내한 것이다. 이것은 이방원이 반(反)명나라 자주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명나라의 안보를 강화시켜준 데 대한 명나라 황실의 답례였다.
이로 인해 조선은 명나라와의 무역에서 최대의 무역흑자를 거두는 나라가 되었다. 조선의 조공 사절단은 매년 세 차례 명나라에 조공을 하고 그만큼의 무역흑자를 안고 돌아왔다.
조선의 흑자폭은 중종 때인 1534년부터는 한층 더 확대되었다. 이때부터 명나라는 조선에 1년에 네 차례의 조공을 허용했다. 이처럼 조선은 자주파인 정도전 정권을 잃는 대신 무역특혜라는 실익을 얻어냈다. 이런 무역특혜는 명나라가 무너진 1644년 이전까지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조선이 얻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명나라도 조선 못지않은 실익을 얻어냈다. 명나라는 무역특혜를 제공하는 대신, 여진족과의 전쟁에 조선군을 동원했다. 명나라는 툭하면 파병을 요청했고 그때마다 조선은 군대를 보내야 했다.
여진족은 왜구와 더불어 명나라의 안보를 가장 많이 위협하는 세력이었다. 명나라는 조선군의 지원에 힘입어 여진족의 위협을 상당부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조선이 얻은 무역흑자는 결국 조선군 파병으로 상쇄된 셈이다. 명나라는 무역적자를 보는 대신 조선군을 공짜로 이용한 셈이다.
명나라의 요구에 휘말려 툭하면 파병을 하는 과정에서 조선이 잃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손실은, 조선의 주적이 아닌 명나라의 주적(여진족)을 막기 위해 조선군이 힘을 소모하다 보니, 일본군이나 왜구의 침략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게 됐다는 점이다.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여진족과의 전쟁에 휘말리다 보니, 조선군은 여진족 기마병을 상대하는 데만 익숙한 군대가 되었다.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이 일본군에 연전연패한 것은, 일본군 같은 보병 위주의 군대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은 명나라 덕분에 무역흑자를 얻었지만, 명나라 때문에 임진왜란을 당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은 자주파 정도전을 잃는 대가로 무역흑자를 얻고 자주국방의 기회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은 정도전을 잃은 대가로 이익을 본 것인가 손실을 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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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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