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윤환 극단 ‘AND’ 대표
김영숙
"연극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야죠. 재밌는 얘기보다 이 사회에 어떤 얘기가 필요하고 어떤 얘기를 던질 것인가를 고민해서 작품을 올립니다."대학로에는 30대의 연출가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과거에 선배들이 경쟁적으로 연극을 만들었던 풍토와는 다르게 서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상대의 작업을 바라보고 이해한다고 한다.
"우리는 친해요. 친분을 떠나 협업하고 있죠. 자신의 연극 세계에 갇혀있기보다 서로 생각과 행동이 열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전 대표는 올해 오랜만에 연기를 했다. 지난 4월,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에서 한국근대문학극장이 열렸는데, 극단 AND가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와 최서해의 <탈출기>를 공연한 것.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비슷한 조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두 작품을 선정했다.
최서해의 <탈출기>는 일제강점기 청년의 울분을 생생하게 터뜨렸고,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실제로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세상에 무력해하는 청춘의 비틀거림을 보여줬다. 두 작품 모두 1인극인데 AND 소속 배우와 둘이 만들었다.
"제가 연출할 때 그 친구가 배우를 하고, 그 친구가 연출할 때 제가 배우를 했죠. 오랜만에 연기를 했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연기를 해보니까 제가 했던 연출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었는지 깨달았어요. 사회도 비슷하다고 봐요. 나와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안녕들 하십니까'... 사회에 물음을 던지다지난 1월,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는 젊은 연출가 시리즈 '틈'을 기획해 공연을 올렸다. 극단 AND는 이강백의 <파수꾼>을 공연했다. 2013년 12월 철도노조 파업 때, 고려대에 재학 중인 주현우 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한 것을 시작으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불었을 때였다.
"그때 저는 '대한민국이 1970년대로 돌아갔다면 난 그 시대의 희곡을 꺼내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한국 사회가 1970년대 유신독재시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했거든요."희곡 <파수꾼>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리떼의 습격을 알리기 위해 망루에서 들판을 지키는 파수꾼이 촌장의 강압으로 "이리떼가 나타났다"라고 거짓으로 외친다. 소년은 이리떼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거짓 정보도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촌장에게 동조한다.
"지금의 공권력과 매체의 거짓선동을 토론하고 싶었어요.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 북>에 연극을 홍보하고 연극이 끝난 후 토론도 진행했어요."20분 계획으로 진행한 토론은 2시간도 부족해 뒤풀이 자리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이 사회는 인간이 만든 상품이 인간보다 더 값어치 있는 사회가 아닐까요? 모든 것이 상품화돼있는 사회에서 과연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요?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우리는 얼마나 무수한 술자리에서, 연습실에서, 공연장에서, 삶의 한편에서, 이 대사를 품고 살았던가요? 우리의 연극이 아닌, 희곡의 대사가 아닌, 배우의 연기가 아닌, 사느냐 죽느냐 소리가 도처에 가득합니다.세익스피어의 '햄릿'에 쓰여 있는 이 대사는 그저 고전의 한 대목인가요? 연극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연극은 썩고 병들어가는 사회에 생생하게 경고하고 맞서는 것이라 배웠습니다.후배님 선배님 그리고 선생님. 연극이 지금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얘기해주세요. 연극인 선·후배님, 선생님 안녕들 하시지요?<전 대표가 쓴 혜화동1번지 젊은 연출가 시리즈 '틈', 파수꾼 출사표 중>'분칠'한 인천을 '생얼' 인천으로전 대표는 서울 중심의 활동에서 인천과의 연계성을 높여 인천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 극단 멤버들 중 인천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반반이에요. 요즘은 집단적으로 인천을 공부하고 있어요. 공부할수록 인천에서 활동하고 싶은 이유가 더 생겨요. 저도 거주만 했지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 살았죠. 공부하면서 인천의 뼈아픈 역사를 알았어요."근대 개항지로 외국 문물이 들어옴과 동시에 전쟁과 식민지배의 역사들을 알고 난 전 대표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 보존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러나 후대들은 역사에 대한 성찰이나 인식보다는 그것을 문화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분칠의 도시 같아요. 인천은 그 안에 뭔가 있는데 보기 좋게 분칠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인천에서 하고 싶은 작업이 분칠을 없애는 작업, '생얼'인 인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에요."전 대표는 내년에 인천지역 문화의 상징이자 역사성이 있는 거리에서 감춰져 있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단다. 그러기 위해 인천을 더 많이 공부할 계획이라고.
"대학로에서는 연극계 평이나 선배들의 시선이 무척 신경 쓰여요. 하지만 인천에서 하는 공연은 순수하게 관객을 만나는 느낌이라 편하고 좋아요. 인천에서 하고 싶은 걸 과감하게 할 수 있게 더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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