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갈 흉상미국인이었던 칼 밀러(Carl Miller)는 1979년 귀화를 하게 됐는데, 민씨로 성을 정하면서 본관을 펜실베니아 민씨로 했으나 호적계 공무원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여흥민씨가 되었다고 한다.
정태승
이 수목원의 설립자는 민병갈(1921~2002)이라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이 분은 한국전쟁 전후 미군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고, 이후에는 금융관련 업무로 우리나라와 인연을 이어간 칼 밀러(Carl Miller)라는 미국인이었다. 우리나라의 은행에서 근무하던 시절 만리포 해수욕장을 자주 찾던 민병갈은 1962년 우연히 천리포 해안의 땅 6000평을 매입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18만 평 규모 수목원의 모태가 됐다고 한다. 수목원 사업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천리포 수목원에는 1300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목련류 410종, 감탕나무류 400종, 동백나무류 320종, 단풍나무류 200종 등인데 이 중 목련류는 수집 규모로 볼 때 단연 세계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탕나무류와 동백류 수집도 국제적인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42쪽)지인들과 지난 6일과 7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온 수목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흥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내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행 중엔 원예전문가도 있었는데, 그가 권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란 책은 칼 밀러라는 백인 남성이 한국인이 되는 과정과 그가 해안선에 맞닿은 박토에 세계적인 수목원을 가꾸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소개돼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보유하고 있는 수종과 계절별로 피는 꽃으로 사시사철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 외에도 국내의 다른 유명 수목원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지난달 내가 방문해 수목원길 따라 나무와 꽃구경을 할 때도 느낀 바지만, 이 수목원의 주인은 철저하게 나무와 꽃들이다. 길에 나무가 심어져 있다거나 가지가 드리워 질 경우 사람이 돌아가거나 피해야 한다. 길이 바뀌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목원에 대한 설립자 민병갈의 철학이 담겨있다.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 가운데는 길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베어버린 직원이 즉각 해고된 적이 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