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한성순 민주노총 충남지역노동조합 태안농협하나로마트 지부장. 우여곡절 끝에 노조가 결성됐지만 조합원은 불과 3명에 그쳤다. 마트측과 정규직의 무시와 회유, 그리고 협박이 걸림돌이었다. 그는 말했다. "밥값 10만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정대희
그녀는 얌전한 아줌마였다. 묵묵히 주어진 업무에만 충실할 뿐, 눈에 띄는 직원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마트에서 근무했지만 군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본 적이 없었다. 되도록 말을 아끼는 축에 속해 동료들 사이에선 '조용한 언니'로 통했다.
그런 호칭이 붙은 데는 성격이 한몫했다.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소심한 여자였다. 기억하기론 학창시절부터 그랬다. 친구들 앞에 서면 얼굴을 붉히고 주뼛거렸다. 그 시절, 흔하게 꿈꾸고 시도해볼 법한 일탈 행동도 해본 적이 없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는 모범생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분고분하고 조용한 아가씨였다. 집에서는 그런 그를 말 잘 듣는 딸로 여겼지만 친구들은 '숙맥'이라 놀렸다.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이었다.
어렵게 얻어낸 '계약직' 전환... 결과는 식대비 삭감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는 현재 근무하는 대형마트에 취직했다. 이모부가 소개시켜준 직장이었다. 시골마을에서 가정주부가 할 수 있는, 손꼽히는 일터였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여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착실히 일만 한다면 수입은 꾸준히 보장됐다.
교대근무를 하며 안내데스크 일을 맡았다. 납품과 공산품 관리, 고객 안내 등이 담당업무였다. 마트서 하는 일치곤 비교적 고객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적은 편이었다. 꼼꼼하고 내성적인 성향이 도움이 됐다.
직장맘의 일상은 고됐다. 그렇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마트서 일하는 아줌마들은 다들 비슷했다. 죄다 데칼코마니 같은 하루를 보냈으나 오히려 정상적이고 안정된 삶이라 느꼈다.
회사에 순종하며 시간제로 6년을 일한 어느 날. 우연히 남자직원들은 계약직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로형태에 그런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마트 관리자를 찾아가 사정을 물었다.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자는 한 집안의 기둥이어서 보다 처우가 좋은 계약직으로 채용했단다.
여자가 기둥인 직원이 서너 명 됐다. 그들을 대신해 남녀차별이라고 따져 물었다. 옥신각신 한바탕 소동을 벌어졌고 그제야 마트 측은 근로기간 5년 이상된 직원에 한해 계약직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성순씨도 드디어 계약직이 됐다. 마트 측은 계약직이 되면 처우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시간제 동료들도 달라질 노동 대가를 기대하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간제 근무 당시 지급되던 식대비가 삭감됐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시 '총대'를 메고 마트 관리자를 찾아갔다. 그동안 직원들 사이에 쌓인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 마트 측은 계약직 고용에 관한 서류를 내밀며, 식비지급은 의무가 아니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처우개선이 불리하게 바뀐다는 설명은 없었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구내식당이 아닌 집을 이용하는 직원이 생겼다. 하지만 월급은 하루 식비 3500원이 제외된 금액을 손에 쥐게 됐다. 마트 측은 밥을 먹든 안 먹든 식비는 무조건 제외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일 묵묵히 하던 '조용한 언니' 변하게 한 밥값 1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