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정밀점검민간점검업체 직원이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하는 모습. 감지기의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최영
민간에서 실시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의 가장 큰 문제는 건축주로부터 점검 의뢰와 돈을 받고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문 소방시설관리업자 입장에선 성실한 소방시설점검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다. 건축물 소유주의 입장에선 "내 돈 주고 시키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돈 주는 입장 측의 '갑질'은 더더욱 성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갑을 관계'라는 근원적 문제점은 전문 점검업자들의 가격경쟁을 부추기고 소방시설관리 업무를 발주하는 건축물 관계인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줘야만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관련 전문 업체들은 내년, 그리고 다음년에도 해당 건축물의 점검을 수주해야만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전문 업자가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하면 적게는 수 개에서 수십 개에 이르는 소방시설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점검업자는 문제가 발견된 이 점검보고서를 그대로 소방관서에 제출해야 하지만 정작 소방관서에 제출되는 보고서에는 실제 지적된 점검결과와는 다르게 "이상이 없다"거나 "미미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꾸며진 허위 보고서가 제출되기 일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점검비용을 지불하고 점검업체를 선정하는 건축주가 요구하는 사항을 막무가내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실제 소방서에 제출되는 보고서를 단 하나라도 수정하지 않는 경우는 많아봐야 20%도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실점검 부추기는 '저가 가격 경쟁'경기도에 위치한 한 아파트는 1900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다. 이 아파트의 올해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 실태를 확인할 결과 점검비용은 고작 180만 원, 점검일은 단 3일이었다.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점검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수십 개의 동이 연결된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설비와 각 동에 들어간 자동화재탐지설비, 제연설비 등 이 아파트에 설치된 소방시설만해도 수십 종에 이르지만 이를 단 3일의 일정으로 점검을 완료한 셈이다. 그것도 180만 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저가의 점검비를 받았다.
이처럼 낮은 점검비용으로 수주되는 점검업 시장은 부실한 소방시설점검을 부추기는 심각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소방시설점검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다 보니 올해 초 기준으로 전국의 관련 전문업체는 620개를 넘어섰고 결국엔 업체들 간의 경쟁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
소방시설관리업체 사이에서는 타 업체보다 싼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일부 특수건축물을 제외하고서는 점검 능력을 과시하며 영업을 하는 업체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업체가 한 건축물의 점검을 100만 원에 맡겠다고 하면 B업체는 90만 원, C 업체는 50만 원(50% 이상)까지 가격을 낮춰 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소방시설관리업계의 관계자 A씨는 "같은 업체가 보더라도 도저히 제대로 된 점검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으로 점검을 수주하는 업체들도 많다"며 "이렇듯 터무니 없는 가격은 점검 일자를 줄이게 되고 적정한 인력을 투입시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부실점검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고 말했다.
먹고 살 걱정에 업자들 '양심'도 행방불명 먹고 살 걱정이 앞서 행방을 찾아볼 수 없는 소방시설관리업자들의 '양심'도 심각한 문제다. 소방시설의 민간 자체점검은 소방관서를 통해 주도적으로 이뤄지던 점검을 민간에 이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소방시설관리사라는 전문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소방시설관리업이라는 업종을 만든 것은 이러한 민간 차원의 점검을 활성화시켜 소방점검에 투입되는 부족한 소방인력 문제를 해소하고 건축물 관계자들의 자체적인 화재안전 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도입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방시설관리업을 수행하는 일부 업자들은 관에서 주도적으로 수행하던 소방시설점검 업무를 민간차원에서 도맡고 있다는 '책임의식'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점검보다는 점검 수주에 열을 올리는 시장경쟁 구도를 불러오고 있다는 게 관련 분야의 공통된 지적이다.
소신있는 업체가 정상적인 점검을 위해 적정 가격을 제시한다 해도 일부 업체가 저가의 점검 비용을 건축주에게 제시하면 시장 경쟁 구도는 자연히 저가 중심으로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적정한 점검비용에 대한 표준 보다는 각 업체가 제시하는 가격에 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보니 아무리 점검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는다 해도 하나의 업체가 점검비용을 낮게 제시하면 그 기준에 따라가는 것이 현재의 시장 구조"라고 말했다.
또한 점검에 대한 무한적 책임을 지는 소방시설관리사(법적 자격자)가 종합정밀점검 이후 건축주와의 협의 과정에서 보고서의 수정을 거부하는 일도 있지만 해당 관리사가 속한 업체의 사업주가 나서서 이를 제재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다.
한 소방시설관리사는 "사업주의 입장에선 차후 점검과 건축주와의 관계 때문에 말(건축주 요구)을 들어 주라고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유자격자인 관리사는 행정처분까지 받게 된다"며 "업주의 입장과 자격자의 입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유자격자들이 제대로 된 점검을 할 수 없는 시장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허술한 소방점검, 손 놓은 소방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