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동이 불편해지거든 고민 말고 요양원에 보내라"

너의 어린이집과 나의 요양원

등록 2014.06.24 16:12수정 2014.06.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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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된 아들은 매일 아침 10시 전에 어린이집으로 등원해서 저녁 7지 즈음에 하원을 한다. 갓 돌 지난 아이를 남의 손에 10시간씩 맡기려니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다. 본인은 또 얼마나 힘들까.


뭐, 어린이집에 내려 놓기가 무섭게 제 선생님에게 쪼르르 달려가기 일쑤지만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선생님 한 분의 보살핌과 관심을 나누자면 나름 꽤나 애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아들이나 우리 부부나 적응이 된 상태다. 처음 어린이집에 애를 맡기려고 할 때는 뭐 하나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일반 학교 체계와 비슷하게 운영된다. 3월에 입학이란 절차를 거치고 7월에는 방학도 있다. 졸업식을 따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어린이집의 경우 4살까지만 다니고 그 이후에는 4살 이상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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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어린이집 가방 아들은 아직 저 작은가방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신 들어준다. 언젠가 제 힘으로 메고 갈 날이 오겠지. ⓒ 강현호


"오후 5시 전에 데려가세요"... 이해가 안 갔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전혀 모르고 처음에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해두고서 연락이 없기에 '어린이집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더니 우리가 너무 눈이 높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대기등록을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정작 학기가 끝나고 3월이 되어야 어린이집 문이 활짝 열리는 사정은 모르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더니 2월 중순이 되자 여러 어린이집들에서 자리가 났다고 동시에 연락이 왔다.

그때 여러 어린이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하나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 까닭에 애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맡겨야 했다. 혹시라도 우리 애만 혼자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해서 저녁 늦게까지 남아 있는 다른 애들은 없는지 물어봤다. 답은 약속한 듯 똑같았다.


"오후 5시 전에 대부분 데려 가세요. 특히 영아들은 저녁까지 남아 있는 애는 없습니다. 그렇게 오래 있으면 못 버텨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건 좀 이상하다. 직장인이라면 아침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다지만 현실은 앞뒤에 한 시간씩은 더 붙는다. 그런 집에서 애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건 어떻게 한다고 치자. 데려오는 건? 상사 눈치 봐가며 득달같이 회사를 빠져나온다고 해도 7시 30분(우리 동네 어린이집의 하원 마지노선)까지 어린이집에 도착 하려면 피를 말리는 뜀박질이 있어야 할 거다.


그런데 저녁까지 남아 있는 아이가 없다? 맞벌이 부부 둘만 있는 집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조부모의 도움이 있거나 부모 중 한 쪽은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자영업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대부분 그럴 수가 있지? 알고보니 이 동은 씨족 공동체였고 외벌이로도 생활이 가능한 중산층 밀집지역이었다.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들도 우리 사정을 이해했고 어린이집의 운영원칙이라 늦게까지 맡긴다고 해도 안 된다고는 못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러면 애가 힘들어한다며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충고했다. 맞는 말이다. 애가 버거워 할 거다. 우리도 안다. 하지만 그 방법 말고는 다른 수가 없으니 여기에 맡기는 게 아니겠느냐는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애를 봐줄 사람과 대놓고 척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지금 우리 애는 어린이집에 마지막까지 남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7시가 다 돼서 어린이집 초인종을 누르면 당직 선생님도 우리 아들도 누군지 알고 목소리가 커진다. 문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아들은 뒤뚱거리면서도 발을 재게 놀려 나에게 달려와 안기다. 그때 지르는 깍깍하는 비명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이면서도 슬픈 소리다. 새끼가 제 아비를 보고 그렇게 반가웠을 때에는 그 앞에 쌓았을 간절함과 그리움이 오죽했으랴.

아이는 어린이집을 나서고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문장이 안 되는 말로 떠드느라 바쁘다. 아비를 만나 즐겁기도 하겠고 밖으로 나와 신도 날 법하다. 이리도 좋아하니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에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부모 노릇 잘하고 있는 걸까?'

그나마 나는 애를 등하원 시키면서 좀 더 오래 애와 시간을 보내지만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내는 그런 시간이 부족하기에 더 마음 아파한다. 불쑥불쑥 회사를 그만두거나 계약직으로 전환해서 애를 직접 돌보거나 최소한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시각이라도 앞당기자고 몇 번을 이야기 했었다. 고민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상황을 돌파해 가자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다행히 어린이집 원장들의 염려와 달리 아이는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닌 이후로 기침과 감기를 달고 살면서 약을 간식처럼 먹기는 하지만 크게 앓은 적 없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음식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싼다. 우리가 통제하지 못할 만큼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린 적도 없다. 밤에 잠들면 새벽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며 뽀뽀도 아낌없이 해 주는 고마운 녀석이다.

안다. 이 모든 게 부모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거. 애의 입장에서 살피지 못하고 그저 우리 좋을 대로 해석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아들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부모인 우리가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아들이 건강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언제가 아내가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걸 너무 안타까워 하기에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내가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거든 고민하지 말고 요양원에 보내라고 해. 대신 나도 최선을 다해 어린이집 알아보고 보냈으니까 능력껏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데로 보내라고 해."

아들과 거래를 하는 듯해서 속으로는 좀 민망하기도 하고 유치하다 싶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하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구도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흔히 부모가 자식에게 희생하기를 사회는 요구하는데 난 그게 가족 모두에게 짐을 지워주는 불행의 시작이라고 본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고 미리 대응하기 어렵듯이 자식의 미래를 치밀하게 그려주고 무한 책임져 줄 수 없다면 우선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 충실한다는 건 최소한 희생은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섣부른 희생보다는 조금씩 내 능력을 키우며 살기로 했고 매사에 미안해하기보다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아들을 위한 삶이란 것도 어쨌든 나에게서 시작되어야 하므로 나를 똑바로 세우는 게 먼저다. 또, 아들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니 제 능력껏의 고통분담을 꿋꿋이 주리라 믿는다. 이런 나의 믿음에 아들은 아직까지 건강과 웃음으로 답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캠핑 블로그 게재
#어린이집 #부모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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