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식당 취사병 선임은 대근이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더욱 화를 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
선임이 심한 욕설을 하고 나면 대근이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대근이는 선임에게 욕을 먹고 나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선임은 대근이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더 화를 냈단다.
"새끼야, 너는 매번 죄송하다는 말만 해. 그리고는 변화가 없어. 야! 너는 선임이 얘기하하는데 쳐다보지도 않냐? XXXX, 이제 사람을 막 무시하네. XXXX!"대근이는 선임의 말대로 빠른 일처리를 위해 일에만 집중한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선임은 대근에게 말을 걸었고, 쳐다보지 않았다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느리다고 해서 일을 빨리하려고 하면 말을 걸어요. 그리고 '쳐다보지 않았다'고, '듣는 척만 한다'고 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을 할 정도로 제가 능숙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트집을 잡아요."대근이는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게 빠졌다. 나는 대근이의 마른 몸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통통하고 귀여워 고등학생 같았던 그가 20킬로그램씩이나 빠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내무반에 있을 때는 마음이 편해요. 아침에 일어나 간부식당에 가려고 하면 숨이 차고, 어지럽고, 답답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죽을 것만 같아요."나는 대근이에게 견디라고 말해줬다. 군대는 폐쇄적인 공간이라 환경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고, 그 선임도 힘이 들어서 네게 그러는 것이라고, 그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라고.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도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네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네게도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힘이 들면 윗사람에게 말해서 보직을 바꿀 수는 없니?""친한 선임에게 고민을 털어놨어요. '죽을 만큼 힘이 들면 높은 사람을 찾아가서 말하라'로 하더라고요. 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간부식당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취사병은 저와 맞지 않아요. 선생님, 어쩌죠?"나는 대근이에게 바로 윗사람을 만나보라고 말해줬다. 정신이 처참하게 밟힌 뒤에 환경을 바꾼다고 해서 마음이 온전하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대근이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란다. 그 이유는 선임이 한 말 때문이었다. 한 선임은 대근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 너 힘든 거 알아. 그런데 너 힘들다고 윗선에 얘기하면 그 사람들은 뭐가 되냐? 너 때문에 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할까. 그리고 그런 일 생기면 너는 좋을 것 같아? 관심병사 되는 거지."대근이는 군에서 관심병사가 되면 군 생활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체 생활에서 열외가 된다는 것은 노골적인 따돌림과 다르지 않았다.
"대근아, 넌 내게 소중한 존재란다"며칠 전에도 대근이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대근이는 우울증이 깊어졌는지 자신의 얼굴을 보는 사람마다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을 한다고 전했다. 여전히 그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더 어두워졌다. 대근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 이러다 죽을 거 같아요. 동기가 저보고 곧 자살하기 직전의 사람 같다고 그래요. 표정이 왜 그러냐고."나는 대근이의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웃기지 마. 선생님이 너 없으면 누구한테 손 편지를 쓰겠어? 내가 6일 전에 편지 보냈는데 아직 못 받았니? 왜 아직도 전해지지 않았지? 일곱 장이나 썼는데…. 너도 긴 답장을 보내줘야 해. 내가 너 때문에 손 편지도 써봤어. 정말 고마워. 우리 대근이, 쌤이 사랑하는 거 알지?"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선임에게 너는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일 수 있지만, 내게는 네가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라는 사실만 전했다.
지난 21일 강원도 고성 22사단 GOP(일반전초)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뒤 탈영한 임 병장의 일은 내게 충격 이상의 것으로 다가왔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대근이의 편지를 기다린다. 그리고 한여름, 백일 휴가 때 녀석이 웃으며 나를 찾아올 그때가 빨리 오길 바란다.
"대근아, 너는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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