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은 민주주의 후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유성호
전교조는 패소했다. '완패'라는 말을 쓴 언론이 있었을 정도로 확실하게 패소했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영원히' 패소하게 되는 걸까. 김 교수는 예의 책에서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입장이 현재 힘을 얻고 있는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물며 행정법원의 1심 재판부가 내린 결론임에랴.
이번 재판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반정우 부장판사는 전교조에 대한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적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재판 결과를 놓고 전교조가 '합법노조'에서 사실상 '불법노조'로 바뀌게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외노조는 '불법노조'와 다르다. 법외노조는 정확히 말하면 교원노조법의 범위 밖에 있다는 말이다. 불법노조가 아니므로 전교조에 가입하거나 전교조 활동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출범 때부터 노동기본권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 전교조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에 근거한다. 이들 법률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한다. 지역·직종·산업별노조와 같은 초기업단위 노조에는 해직자나 구직자가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원노조법은 조합원 자격이 '현직 교원'에게만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다만 해고교원으로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사람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교원으로 본다고 했다.
전교조는 1999년 제정된 내부 규약 부칙에 부당 해고된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해직교사 출신의 전교조 조합원은 9명이다(전교조 이영주 수석부위원장에 따르면, 전교조 내 전체 해직 교사 수는 23명이라고 한다). 전교조는 이들이 모두 정당한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반 부장판사는 이들을 교원노조법상의 부당하게 해고된 교원으로 보지 않았다.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자동으로 퇴직했거나 해임처분 소송 패소판결이 확정된 경우기 때문이었다. 교원노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해고자와 구별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교원노조법상의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놓고 있는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적법하다는 것은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교사가 단 1명이라도 있다면 교원노조에 수만 명의 교사가 가입해 있더라도 단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습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번 판결은 교사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교사는 노동자일까, 노동자가 아닐까.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조합원은 교사의 노동자성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적인 잣대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앞서 말한 교원노조법이 있다. 우리 법은 일단 교사를 노동자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다른 일반 노조와 달리 교원노조법에서는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교원의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반정우 부장판사가 이끈 이번 재판부는 교원이 담당하는 일인 '교육'의 '특수성'을 들어 그 자격 제한 규정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교원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공익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논리가 그 근거였다.
재판부 논리에 따르면 교사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가 아니다. 전교조는 출범 때부터 교육과 교원의 '특수성'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노동기본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했다. 단체행동권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단체교섭권은 현실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결권은, 전교조에 가입하려는 교사들에 대한 학교관리자들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 불이익 등으로 훼손당할 때가 많았다. 그나마도 이번 판결로 단결권 자체가 부정되면서 소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지금 어느 시대를 지나고 있는가전교조의 공동변호인단 신인수 변호사는 이번 재판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로 인해서 우리나라 사법부와 민주주의 시계는 정확히 1988년으로 후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용부로부터 규약 시정명령을 받은 후 정해진 기간 안에 응하지 않으면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비판하면서였다.
1988년 정부가 여소야대 국회를 피해 밀실에서 만든 것이 일반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라고 한다. 이 조항은 노태우 정부 이래 지금껏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어 사문화한 법령이다. 우리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 오이시디(OECD) 소속 단체들도 줄기차게 폐지 권고를 해오고 있다. 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바로 그 '악법'에 근거한 것이라며 "전 세계에 이런 법률도, 조치도 사례도 없다"고 비판했다. '사법후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방관이나 경찰, 군인들이 노조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우리가 보기에 '기상천외한' 노조들이 많다. 소방노조와 경찰노조, 군인노조를 가진 나라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프랑스처럼 판사노조가 설립되어 있는 나라도 있다. 소방관과 경찰, 군인, 판사는 각기 하는 일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형식적으로는 교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육의 '특수성'을 들어 교사들의 실질적인 노동3권을 박탈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지금 어느 시대를 지나고 있는가. 헌법이 보장해 놓은 노동3권을 하위법률의 조항 몇 개로 간단히 무력화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반 부장판사가 교사들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교원노조법상의 조합원 자격 제한 규정을 정당하다고 본 것은, 그러한 자격 제한으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반 부장판사가 강조한 '공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학생들의 교육 받을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는 점, 교육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반 부장판사의 논리를 뒤집으면, 교원노조법상의 자격 제한 규정이 없다면 공익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법률가들이 중시한다는 '리갈 마인드(Legal Mind)'가 없어서일까. 나는 반 부장판사가 내세운 '공익' 논리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전교조는 출범 이후 정부 교육정책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부패한 사학재단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극도로 제한된 정치 활동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임금 인상과 같은 교사의 '사익'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공익'을 위한 싸움의 외길을 걸어왔다. 현재 정부와 사법부가 문제 삼고 있는 전교조 해직교사 9명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수천 명에 이르는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그 생생한 증인들이다.
명령 복종 가르치는 교사 있는 한, 사회 발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