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법원이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 판결을 하자 전교조 경남지부는 19일 오후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비난했다.
윤성효
단체행동권은 아예 시작 때부터 박탈당했고, 단체교섭권은 교육부의 해태로 유명무실해졌고, 이제 하나 남은 단결권마저 이렇게 아작내버렸으니 전교조는 노동3권 중 단 한 가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조합이 되고 말았다.오늘은 행정권력과 사법권력이 합심하여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 모두를 전교조에서 박탈해버린 날이다. 이렇게 하여 노동기본권 단 한 가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조합 전교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노동조합' 아닌가. 세계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날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다. 퇴근길에 전화번호를 눌렀다. 김 선생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의외였다. 페이스북 글에서 "대한민국 헌법에서 노동3권 보장하고 있는 33조를 오려내버리는 게 훨씬 더 쉬울 듯"하다며 분개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잖아.""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다른 조합원 선생님들과는 얘기 좀 나누셨어요?""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어. 그런데 교감이….""교감이 뭐라 그래요?""응. 내 표정이 시무룩해 보여 그랬는지 먼저 다가와 '이렇게 돼서 어떻게 해요' 하대.""그랬군요. 저는 선생님들과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어요."그랬다. 어제(19일)는 아침부터 교무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이런저런 말을 던지며 출근 직후 교무실에 활기를 불어넣곤 하던 뒷자리 박 선생님도 오전 내내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관련 속보 기사는 19일 오후 2시가 훨씬 지나서 뜨기 시작했다. 말다툼한 아이들 처리 문제로 학생부에 올라갔다가 그곳에 있는 컴퓨터 화면으로 재판 관련 속보를 봤다. 맥이 풀렸다. 나름대로 그간의 경과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기대한 바가 있어 더 그랬던 것 같다.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훑다가 정신을 차려 내 자리가 있는 교무실로 향했다. 인터넷을 띄워 재판 관련 기사들을 출력했다. 그사이 다른 일로 먼저 복사기 쪽에 가 있던 박 선생님이 내가 출력한 인쇄물을 대신 가져다 주셨다. 박 선생님은 나와 함께 전교조에 속해 있는 동료 교사다.
노동3권 중 마지막 남은 '단결권'마저 아작낸 재판부박 선생님은 내게 출력물만 건네곤 자기 자리에 가 털썩 앉았다. 처음에는 박 선생님에게 일부러라도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어떤 말로 나 자신부터 추슬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박 선생님의 굳어 있는 표정이 우리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김 선생님 말마따나 어제 우리나라는 세계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를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하위 법 조항과 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원천 차단하는 재판부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재판부 논리는 이렇다. 교원노조에는 현직 교사만 가입해야 한다. 해직자나 퇴직자는 가입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이 훼손되어 학교교육이 파행을 겪는 등 국민 전체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만 가입해 있어야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교육제도가 유지되는 등 더 큰 공익을 담보할 수 있단다.
오지랖 넓은 재판부는 교원이 갖춰야 할 특별한 요건 같은 것들도 일러 주었다. "교원은 학생을 가르치기 때문에 윤리성과 자주성, 공공성, 전문성이 일반 근로자보다 강조된다"고 했다고 한다. 일반 노조보다 가입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교원노조법이 단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직 교사만을 교원노조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교원노조법은 1999년 제정되었다. 하지만 그 골격은 1991년 제정된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교원노조법에서 사용하는 '노동조합'이라는 표현의 본질을 '교원단체'로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재판부가 과거로 퇴행했다고 비난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판부가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염려'해주는 점도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재판부의 주장은 교사 아닌 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으면 외부 논리에 휘둘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에 터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제1의 주범은 정부 아니었나.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교사를 계속 조합원으로 품고 있는 것은 전교조가 교원노조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이다. 어디 생뚱맞은 데 있는 외부인을 조합원으로 끌어 들여와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해직과 복직으로 점철된 전교조 역사, 노동부는 모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