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혹시 홈런볼 있어요?"

[내가 추억하는 가게 이야기 ①] 우정슈퍼,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등록 2014.06.20 14:04수정 2014.06.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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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자주 지나쳤던 슈퍼가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700원이었던 용돈으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던 곳. 참새가 방앗간 피해갈 수 없다는 말처럼 세뱃돈이라도 받는 날이면 평소보다 조금 더 비싼 과자를 고르며 깔깔대던 그 곳.


우정슈퍼 주인아저씨는 참 호탕하신 분이었는데 풍채도 제법 있으셔서 동네 꼬마들이 무서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가게 유리창에 문패가 하나 걸렸다.

'우리 동네 청소년 지킴이' 아니면 분명 '우리 동네 청소년 보호소' 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한참 가출청소년이나 비행청소년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던 때라 자발적인 신청을 받아 도움을 줄 수 있게 했다. 많은 가출 청소년이 아저씨의 가게로 찾아올 확률은 크지 않겠지만, 아저씨가 좋은 일에 앞장선다는 인상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당시에는 근처에 주택이며 아파트가 제법 많았고 오가는 인구가 꽤 있어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점점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고 동네도 점점 한적해져 갔고 나 역시 초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아예 그쪽으로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우정슈퍼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아직 있으려나? 설마 없어졌겠지."


그렇게 십년을 넘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여전히 노란색 간판이 반짝였고 가게는 그대로였다.

"설마 아저씨도?"


그리고 내 기억 속의 아저씨는 창가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약간 더 나온 배에 구부정한 자세였지만, 그때 그 주인 아저씨였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슈퍼에 들어갔는데 특별히 살 것이 없어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과자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그리운 추억. 그리고 주인아저씨
과자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그리운 추억. 그리고 주인아저씨 최하나

"아저씨, 혹시 홈런볼 있어요?"

벌떡 일어나 먼지가 뽀얗게 쌓인 매대에 가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나온 아저씨.

"그거 실은 단가가 비싼데 갖다놓으면 사 가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다 까먹었다가 마누라한테 혼났어. 혹시나 하고 봤는데 없네. 어쩌지?"

그모습 그대로였다.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과자 대신에 스타킹을 하나 사서 나왔다.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기뻤다가 슬펐다가 했던 것 같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아저씨가 반가워서. 하지만 이제 더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 돼서.

그리고 어느 날부터 시작된 공사. 갑자기 생각이 나서 20일에 '우정슈퍼'를 다시 찾아가 봤다. 그러나 그 슈퍼는 사라져버렸다. 아저씨한테 인사도 하지 못 했는데.

그날 이후 나는 단골집에 가면 사진을 꼭 찍었다. 어느 날 말도 없이 문을 닫게 될까봐.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게 될까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자주 들러 인사를 나눈다. 우리가 또 언제 어떻게 헤어지게 될 지 몰라서.
#우정슈퍼 #추억 #과자 #홈런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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