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표지지금까지 존재한 번역서 <이방인>을 실랄하게 비판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역자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표지 설명이 도발적이다.
새움
몇 달 전, 이정서라는 필명의 번역가가 카뮈의 <이방인>을 들고 나타났다. 인터넷 검색어에 '이방인'이 오랫동안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이제까지 소설 <이방인>은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난해한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대충 요약하자면, <이방인>은 도발적인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 '사랑하지는 않는' 여자를 만나 정사를 나누고, 친구도 아닌 이웃을 위해 한 아랍남자를 총살하는데 그 이유가 '작열하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법정진술을 하는 남자, 뫼르소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다.
때는 1942년,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의 수도 알제가 배경이다. 소설의 저자, 까뮈 또한 알제 사람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프랑스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곧 식민지 출신 이방인인 카뮈가 될 수도 있다. 독자들은 지식인들의 서평이나 설명 등을 통해 사십 대에 사망한 카뮈의 짧은 일생과 그의 냉소적인 태도 등을 주인공 뫼르소에 투사했다.
<이방인>의 새로운 역자, 이정서는 중학생인 자신의 딸과 지인들이 기존 번역자의 <이방인>을 읽으면서 이해를 못하고 있는 자신들 스스로를 책망하는 현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번역을 결심하게 되었다며 번역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또, 이씨는 역자서문에서 '원래 카뮈의 <이방인>은 서너 시간이면 다 읽고 감탄할 소설이었던 것이다. 어느 한 문장 이해되지 않는 곳도 없는, 완벽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등장인물의 입체적 캐릭터에 집중함으로써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해되는 재미있는 소설로 <이방인>을 소개한다. 소설을 읽고 나면, 이 소설의 읽는 재미를 짚어주는 역자노트도 만날 수도 있다. 이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소설을 읽는 것도 의미 있을 듯 하다.
나는 누구의 번역이 정확한 것인가를 알 수 없다. 다만 이 번역본도 읽어보고 저 번역본도 읽어본 바, 새로 번역된 이정서의 <이방인>을 읽으면서는 쉽게 몰입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어머니의 장례식과 어머니 생전의 주변 인물들, 뫼르소의 여자 마리, 이웃 살라미스 영감과 집 나간 늙은 개, 또 다른 이웃 레몽, 그의 여자, 그리고 뫼르소의 총격을 받는 그 여자의 오빠(?), 그리고 식당주인 셀레스트 등에 대한 카뮈의 치밀한 인물묘사와 그들의 대화는 소설이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위대한 원작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역자의 출현과 번역의 원래 목적을 놓고 벌이는 논란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방인 (반양장)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새움, 2018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