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안성의 시골버스가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송상호
"아, 거기가 농협 맞는 겨. 그람 내가 말한 거 준비해놔."아마, 그 할아버지의 말에 상대편은 "네"라고 대답했을 듯하다. 우리가 탄 시골버스가 안성시내에서 출발했다. 그냥 조용히 통화했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인데, 할아버지의 화통한 목소리 때문에 괜히 궁금증이 생긴다. 할아버지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해 놓으란 걸까.
차가 시내를 지나 외곽을 달린다. 그 할아버지의 말을 그냥 잊고 있었다.
안성 개산 농협 정류장에 다다랐다. 그 할아버지가 일어선다. 버스 문이 열린다. 아 맞다. 아까 그 통화가 있었지.
"어르신, 이거 맞쥬.""그랴. 맞어." 뭔가 했더니 개 사료였다.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신 거다. 자가 차량이 없는 할아버지는 무거운 개 사료를 사실 때마다 그러시는 거 같았다. 그 직원도 할아버지도 평소에 있는 일처럼 행동했으니까.
할아버지가 미리 준비한 지폐를 그 농협직원에게 건넨다. 농협직원은 일단 물건부터 싣고, 돈을 건네받는다. 할아버지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에 거스름돈 주고받을 필요 없는 정확한 그 금액을 손에서 건넨다.
"그럼, 어르신 안녕히 가셔유.""그랴, 자네도 수고했어. 고마워."그들의 거래는 버스 문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직원도 할아버지도 처음 하는 장사가 아닌 듯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그들의 인사하는 모습을 봐서 다음에도 그렇게 또 이루어질 듯하다.
아무리 순식간이라지만, 도시 같으면 어림도 없을 틈새 시간이다. 승객도 버스기사도 그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밝은 표정으로 사료를 받아 자리에 앉는다. 창밖을 보니 그 직원은 버스를 향해 안녕히 가시라고 연신 인사를 한다. 착한 직원에 넉살 좋은 어르신이다.
시골버스도 기분이 좋은지 시골길을 경쾌하게 달린다. 할아버지가 그 사료를 어깨에 둘러매고 내린다. 할아버지는 큰일을 해낸 냥 가볍지 않은 짐을 거뜬하게 지고,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전에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버스 정류소에 승객이 다 타고 난 후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한 지 5초 정도, 그러니까 50m 정도나 버스가 갔을까.
"아저씨! 아저씨! 잠시만 서 봐유."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다. 버스 밖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라 버스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사실 그 할머니뿐만 아니라 버스에 탄 몇 사람의 이구동성이었다.
"아. 왜 그려유. 뭔 일 났시유."버스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웠다. 모두의 시선이 기사아저씨 쪽이 아닌 창밖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소에서 100m 쯤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다가 멈춰 서고 있었다.
"아, 빨리 뛰어와. 뭐하는 겨?"버스에 탄 한 할아버지가 총각을 향해 외친 목소리다. 그제야 그 목소리를 들은 총각이 포기했던 버스를 타려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 버스에 타고 있던 나를 포함한 열 댓 명의 사람들은 모두 그 총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고개를 죽 내밀고 보거나 일어서서 보았다.
"으샤으샤"누구도 이렇게 소리를 내어 응원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응원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총각도 우리의 응원을 들었는지 조금 전 보다 더 힘껏 달려오는 듯 했다.
다른 차들이 버스를 앞질러나갔다. 시골의 편도 1차선 도로에 버스가 멈춰 섰으니 그럴 수밖에. 몇 대의 차가 앞질러 지나가도 기사아저씨와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모두의 관심사는 그 총각의 뜀박질에 가있었다.
드디어 총각이 버스에 올라탔다. 숨을 헐떡거렸다. 부리나케 교통카드를 찍고는 총각이 말했다.
"난~~~ 또.... 버스를 놓친 줄 알고 뛰지 않았는데..... 감사합니다."그 말을 들은 버스 기사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씩 웃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감사하다고 하느냐. 가끔씩 있는 일이며, 이 정도는 기본이다'라는 식이었다. 거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무슨 큰일을 이루어낸 양 그 총각을 보고 웃었다.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그 총각은 잽싸게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버스는 신나게 안성시내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