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게이트>의 표지.
오마이북
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중심에 섰던 인물이 있다. 바로 장진수 전 주무관이다.
그는 2012년 3월에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 방송 <이털남(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증거인멸 사건에 대해서 폭로했다.
충격적인 사안을 낱낱이 공개한 파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고 국민적인 비판여론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이 분위기는 곧 2010년 끝난 1차 수사가 미흡했다는 여론에 힘입어 2012년에 재수사가 진행된 발판이 되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장진수씨가 쓴 책 <블루게이트>는 2009년 공직윤리지원관실로 그가 부임하게 된 시점에서 시작한다.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던 이 기관에서 일을 시작한 장씨가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특수활동비 상납'이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묘사한 상황을 보면 다름 아닌 불법자금 전달이었다. 수백만 원의 돈을 봉투에 담아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에 상납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12년 검찰 재수사가 있었지만 상납받은 청와대 인사는 죄가 없고 상납한 공무원들만 기소되어 처벌받았다고 한다.
본문에 따르면 장진수씨는 그 뒤로도 구체적인 확인 절차 없이 상급자로부터 받은 영수증을 회계 처리하고,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일을 '심부름'이라는 명목으로 무조건 처리해야만 했다. 그것이 '공무원'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또한 그리 지시 받았던 것이다. 이런 지휘체계는 해당 기관의 소속인원들이 '투명성'보다는 '신속함'을 추구하고, '꼼꼼함'보다는 '충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때문이기도 하다.
점차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업무가 늘어나던 어느 날, 마침내 사건이 터진다. MB 정부를 비난하는 패러디 영상 <쥐코>를 블로그에 게시한 당시 KB한마음 대표 김종익씨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과 사임 압박을 가한 정황이 제보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로 인하여 2010년에 지원관실 점검1팀을 상대로 조사가 시작되고, 장씨는 문서 파쇄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한 뒤에 업무용 컴퓨터의 자료삭제와 하드디스크 파괴를 지시받는다. 바로 '증거 인멸' 작업이었다.
시작된 검찰수사 "내가 한 일이 범죄였다니..."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심리적인 압박이 시작되자 그제야 장진수씨는 탄식하며 후회했다. 그전까지는 미처 자신이 한 일이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불법인지도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발단인 '민간인 불법사찰'보다도 자신이 연루된 '증거 인멸'이 더욱 큰 사건으로 부각되자 당황하는 모습도 책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당황하는 그와 대조적으로 윗선은 신속하게 판단하고 행동한다. '물적 증거'가 가장 위험하니 사무실에 비치된 업무용 컴퓨터의 사찰 관련 자료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하드디스크를 아예 물리적으로 파괴하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 발언에서 언급된 증거인멸 수단의 예가 가히 파격적이다.
"반드시 물리적으로 조치해야 검찰이 복구를 못 해요. 망치로 깨부숴 쓰레기통에 버리든지… 아니면 한강에 던져버리면 더 좋은데. 하드디스크를 분리하기 어려우면 아예 컴퓨터를 통째로 강물에 갖다 던져버려도 괜찮고." (본문 124쪽 중에서)급하게 내려온 지시를 전해들은 장진수씨는 "급하다, 당장 해야 한다"는 말에 의심해볼 틈도 없이 그대로 이행했다. 황급하게 '디가우징(자기장으로 저장장치의 데이터를 영구삭제하는 것)'이 가능한 업체를 알아보고 수원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이 심각한 범죄였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괴로워하며 자책한다. 진짜 문제라면 그가 상황을 자각하고 후회한 시점이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이었다.
"하여튼 공무원에게는 재수 없는 죄가 가장 큰 죄라니까." (본문 227쪽 중에서)반면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한 행위가 '재수 없어서' 운 나쁘게 발각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할 뿐이었다. 그리고 짧은 분노가 빠르게 사그라지고 찾아오는 것은 자기안위를 위한 강력한 생존본능이었다. 그들은 장진수씨가 "모든 증거 인멸을 행한 주범"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자신들은 장씨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적도 없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비열한 권력의 밑바닥을 들추다검찰의 수사가 있기 전까지, 권위적인 태도로 직원들에게 군림하던 공직윤리지원관실 상급자들은 재판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장진수씨의 독박'을 계획한다. 그들이 검찰 조사 직전마다 장씨를 불러 "무조건 모른다고 하라. 상부로부터의 지시는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적 범죄가 아니라고 인정되어 낮은 형량을 받는다"고 '사전교육'한 것이 그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던 장진수씨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상하다고 느낀다. "지켜주겠다"며 "끝까지 의리를 지키라"는 사람들이 공판에선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언만 하고, 결과적으로 장진수씨가 큰 책임을 떠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에 자백할 것을 고민하던 장씨에게 상관이었던 진경락과 최종석은 끊임없이 그를 설득하고 회유한다. 처음에는 "10억을 현금으로 마련해주겠다"고 돈으로 유혹하다가, 이후에는 "대기업에 입사하도록 해주겠다"고 말을 바꾼다.
공통점이 있다면 장진수씨를 제외한 누구든 '내 선까지 오지 않도록'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는 점이었다. 자신보다 아랫사람이 모두 책임을 지기를 바라면서, '상부에서의 지시'와 '조직적 가담'을 은폐하려고 애쓴다. 이 과정에서 '대포폰'과 수천만 원의 변호사비용도 출처가 묘연해진다.
계속되는 거짓말과 배신,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비겁한 모습에 장진수씨는 차라리 진실을 밝히는 편이 낫겠다고 결심한다. 비열한 권력의 밑바닥이 들추어지자, 거짓증언에 동참하는 것은 애국도 충성도 아니라 그들의 범죄를 묻어주는 것일 뿐이라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2012년 <이털남>에서 그는 자신이 듣고 본 것들, 직접 행동한 것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의 진실을 세상에 풀어놓았다.
당당해지려는 개인의 탄생, 계속 이어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