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석달마을 민간인학살사건 피해자 채의진씨(오른쪽 끝, 자료사진).
오마이뉴스 이종호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채의진(78)씨는 "말이 안 된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평생을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살아온 결과가 하루아침에 뒤바뀐 탓인지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마 전 그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대법원이 5월 29일 채씨 등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학살사건 피해자의 국가배상금 소송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었다. 희생자는 3억 원, 배우자는 1억 5000만 원씩 기준을 세워 원고마다 9억~18억씩 지급받도록 한 것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관련 기사 : 민간인학살 희생자 목숨 값 깎는 대법원).
65년 전, 그는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1949년 12월 24일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속봉리 석달마을로 들이닥친 국군은 어린이,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마을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가족 9명을 잃은 소년은 형과 사촌동생의 주검 밑에 깔린 덕분에 간신히 생존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진상 규명을 위해 빨간베레모를 쓴 채 방방곡곡을 뛰어다녔다. 민간인학살규명법 제정 때까지는 이발하지 않겠다며 10년 넘게 길렀던 머리는 2005년 과거사법 이행을 요구하는 행사에서 처음으로 잘랐다.
'빨간베레모 할아버지'가 된 후에야 채씨는 웃을 수 있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의 진상 규명에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법원은 2011년 태도를 바꿨다. 반인륜적 국가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대법원 결정에 따라 채씨는 다시 서울고등법원의 심리를 받았다. 2012년 4월 27일, 법원은 마침내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 채의진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문경학살사건이 일어난 지 63년 만이었다.
63년 만에 국가배상 받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