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들아, 나도 고기 잘 먹을 수 있어

[포토에세이] 노부부 이발하던 날

등록 2014.06.14 20:52수정 2014.06.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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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산책 한 세기 가까이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부축과 지팡이의 힘을 빌어 천천히 걷고, 허리는 굽었지만 할머니는 지팡이만 의지하고서도 잘 걷는다. 젊을 적에는 늘 남편이 앞서가고 뒤에서 쫓아가기 바빴는데 이젠 남편이 아내 따라가기가 바쁘다.
노부부의 산책한 세기 가까이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부축과 지팡이의 힘을 빌어 천천히 걷고, 허리는 굽었지만 할머니는 지팡이만 의지하고서도 잘 걷는다. 젊을 적에는 늘 남편이 앞서가고 뒤에서 쫓아가기 바빴는데 이젠 남편이 아내 따라가기가 바쁘다.김민수

미용실 점심으로 왕갈비탕을 드시고 미용실을 찾은 노부부, 할머니가 먼저 머리를 다듬는다.
미용실점심으로 왕갈비탕을 드시고 미용실을 찾은 노부부, 할머니가 먼저 머리를 다듬는다. 김민수

미소 할머니의 미소, 머리를 자르시면서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이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다. 치매로 아픈 상처들을 많이 잊으셨지만, 그 상황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차마 지우질 못하셨다. 그래서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미소할머니의 미소, 머리를 자르시면서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이 할머니는 우리 어머니다. 치매로 아픈 상처들을 많이 잊으셨지만, 그 상황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차마 지우질 못하셨다. 그래서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았다.김민수

미용실 이제 할아버지 차례다. 할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막내 아들인 나보다 더 힘이 좋으셨다. 이젠 자식들이 옆에서 함께하지 않으면 거동하시질 못하신다.
미용실이제 할아버지 차례다. 할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막내 아들인 나보다 더 힘이 좋으셨다. 이젠 자식들이 옆에서 함께하지 않으면 거동하시질 못하신다.김민수

미용실 언제부터 아버지의 머리가 백발이 되었을까? 기억으로는 칠순때도 백발이 아니셨던 것 같다. 나는 40중반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염색하라는 타박을 받을 정도로 머리가 희다. 다행히 머리숱은 이버지를 닮지 않았다.
미용실언제부터 아버지의 머리가 백발이 되었을까? 기억으로는 칠순때도 백발이 아니셨던 것 같다. 나는 40중반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염색하라는 타박을 받을 정도로 머리가 희다. 다행히 머리숱은 이버지를 닮지 않았다.김민수

미용실 이발하시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어머니. 노부부는 젊었을 때 참으로 많이 다투기도 하셨는데, 이젠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살아오시면서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미용실이발하시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어머니. 노부부는 젊었을 때 참으로 많이 다투기도 하셨는데, 이젠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살아오시면서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김민수

노부부 남편을 바라보다 잠시 자식들 생각에 잠기셨는지, 표정에 근심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젠 아신다. 자신이 고민하고 근심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남은 여생 편안하게 사시면 좋겠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면 그냥 그렇게 남은 여생이라고 해야하는 것일까?
노부부남편을 바라보다 잠시 자식들 생각에 잠기셨는지, 표정에 근심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젠 아신다. 자신이 고민하고 근심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남은 여생 편안하게 사시면 좋겠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면 그냥 그렇게 남은 여생이라고 해야하는 것일까?김민수

이발 머리를 다 다듬으시고 머리를 감는 할아버지, 오늘은 오랜만에 목욕도 하시고, 머리도 깎으시고, 외출하셔서 왕갈비도 드셨다. 이도 시원찮지 않지만, 가장 잘 드시는 음식은 고기다.
이발머리를 다 다듬으시고 머리를 감는 할아버지, 오늘은 오랜만에 목욕도 하시고, 머리도 깎으시고, 외출하셔서 왕갈비도 드셨다. 이도 시원찮지 않지만, 가장 잘 드시는 음식은 고기다. 김민수

* 이 글은 저의 아버지 입장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 기자 말


아침부터 며느리가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시킨다.

며느리가 아내를 목욕 시켜주는 것은 좋지만, 아무리 늙었어도 날 목욕 시켜주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마누라가 목욕을 시켜주면 온수와 냉수를 맞추지 못해서 애를 먹는다. 며느리는 목욕물 온도를 잘 맞춘다.

이놈들이 오늘은 어디를 가려는가?
점심 시간이 다 되었는데 식당에 가서 맛난 것을 사주려나?
왕갈비탕을 잘하는 집이 있단다. 지난 번, 손주 생일에 소갈비를 제법 잘 먹었더니만 막내가 깜짝 놀라며 물었지.

"누가 노인분들 이가 없어서 고기를 못드신다고 하셔요? 우리 아버지 보세요. 나보다 더 잘 드시는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지.


'그려 이놈들아, 나도 고기 잘 먹을 수 있어.'

왕갈비탕을 다 비우고 미용실에 갔다. 아내가 먼저 머리를 깎고, 나도 깎는데 뒤통수가 간지럽다. 이발하는 거 처음 보나? 아내가 계속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미용실 사장이 젊어서 시샘하나?


오랜만에 목욕, 왕갈비탕, 이발.

한 세기 가깝게 살다보니 하루에 이 정도 했으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한 것이다. 이 정도로 행복이 가득했던 적이 언제였나 돌아보니 어릴 적이었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이런 뜻도 있는가 보다.
#노부부 #이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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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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