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이주노동자 와완(23)씨는 진단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병원 측의 '연대보증'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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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받을 돈도 있고, 지난달 받은 월급도 그대로 갖고 있어요.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도와줘서 다 합하면 500만 원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병원에서 입원이 안 된대요.""왜요?""한국사람 데리고 오래요.""회사에서 같이 간 사람 없어요?""회사에서는 입원하지 말고 인도네시아 가래요. 아무도 안 왔어요."
최근 들어 잦아진 기침과 탁해진 가래 때문에 병원에 들렀던 와완(23)은 엑스레이 촬영 결과, 폐암으로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비록 기침이 오래되긴 했지만 그건 공장 먼지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래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CT촬영과 조직검사를 한 결과 폐암 4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와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전이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1년 정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은 아직 20대 초반인 와완이 받아들이기에는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와완이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하겠다고 하자, 회사는 폐암은 장기치료가 필요한 병인 만큼 퇴사 조치한다고 통보했다. 스물 갓 지나 한국에 와서 줄곧 3년을 일한 회사라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6·4 지방선거 다음 날, 와완은 고용해지 통보에도 입원치료를 받고자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병원은 한국인 연대보증을 요구했다. 사측에서는 이미 해고 통보를 한 마당이라, 와완과 그의 친구들은 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을 찾아가서 연대보증을 부탁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다행히 와완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협조로 입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현재 와완은 국내 진료를 계속할지 출국을 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연대보증 섰다가 가집행 당한 활동가입원 약정을 할 때 병원에서 연대 보증인을 요구하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왔다. 내국인도 병원 입원을 할 때 연대보증을 요구받기 때문에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하고 있던 이주노동자가 입원한다고 하면 해고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주노동자에게 내국인 연대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진료 거부와 다를 바 없는 행위다.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의 연대보증이 없으면 입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왜 연대보증을 거절했을까. 단체활동가 중에는 연대보증을 섰다가 상당한 곤란을 겪은 이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연대보증을 섰다가 월급과 집까지 압류되는 일을 경험한 활동가들이 있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는 쉽게 연대보증을 서주지 않는다.
지난 2005년 9월, 심근경색으로 생명이 위독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가 있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의 이아무개 활동가는 "얼른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병원 측의 설명에 급하게 진료비 연대보증을 섰다. 하지만 환자는 심장수술을 받은 지 20여일 뒤 숨졌다. 수술을 받고 사망한 이주노동자에게는 형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외국인은 연대보증을 설 수 없다고 거부했고, 환자를 데리고 갔던 이씨가 연대보증을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씨는 병원으로부터 4300만 원가량의 액수가 적힌 진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이에 이씨는 시민단체 후원회 행사 등을 통해 2200여만 원을 갚았으나 나머지는 갚지 못했다. 2008년, 법원은 이씨에게 진료비 가집행을 통보해왔다. 가집행은 1심 또는 2심 판결에서 원고가 승소할 경우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를 가지고 강제집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이씨는 연대보증 약정 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당시 미지급액 2100만 원은 이주단체 활동가의 1년치 급여와 비슷했다. 누군가가 선한 일을 하다가 월급뿐만 아니라 집에까지 압류가 들어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만일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이 사회에서 누가 선한 일에 발 벗고 나설 수 있을까.
지급능력 없는 환자와 연대보증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