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앤드 오디오 수리전문가 김원모 대일전자 사장.
이희훈
김 사장과 인연을 맺는 하이엔드 오디오들은 절반 이상이 몇 십 년 된 옛날 제품들이다. 최근에 나오는 제품들에 비해 비교적 고장이 잘 나기 때문에 수리점에 맡겨지는 비율도 높다. 그러나 애호가들이 '빈티지'라고 부르는 오래된 제품들은 신제품들이 대체하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의 풍경은 고희를 넘긴 김 사장이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과도 일정 부분 겹친다. 김 사장은 "오래된 제품의 수리가 꾸준히 들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는 제품이라는 의미 아니겠느냐"면서 "망가져서 온 오래된 제품들을 보면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이 맡겨진 제품의 고장난 부분만 고치는 게 아니라 뒤쪽부터 뜯어내 전부 점검하는 '오버홀(overhaul)'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대한 오랫동안 문제 없이 작동하게끔 손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노년을 맞으면서 직업에 대한 애착도 더욱 커졌다. 그는 "이전에는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완전히 삶의 한 부분이 됐다"고 고백했다.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복장에도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점포를 혼자 지키면서도 편한 작업복이 아니라 깨끗히 다린 흰색 와이셔츠에 멀끔한 넥타이 차림으로 일터로 나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50년 한 우물을 팠지만 그는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오디오 수리업계의 '빈티지' 모델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김 사장은 "나이에 맞는 경륜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냥 평범한 '올드모델'이 된다"면서 "나는 '빈티지'로 남기 위해서 새로 나오는 브랜드들을 연구하고 체력 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험이 많다지만 오디오 수리를 귀에만 의존해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전기적인 신호를 시각화시켜주는 기기들을 이용한다. 하이엔드 오디오 같은 경우는 오실로스코프나 디스토션 미터, 주파수를 볼 수 있는 프리컨시 카운터 등 서너 가지 기기를 동원해서 보통 3일 정도에 하나씩 고친다."
- 일을 무척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엄청 재미있다. 사람마다 성격 차이가 있듯이 기계도 각각 성격이 다르다. 며칠 동안 안 풀리는 어려운 수리들이 있는데 그걸 잘 구슬려서 결국 고쳐내면 말이나 글로는 표현 못 하는 쾌감이 온다. 오디오 수리뿐만 아니라 아마 다른 직업에도 그런 희열들이 있겠지. 나는 그것 때문에 이걸 못 놓고 있는 거다."
- 어떤 모델이 수리가 어렵나. "오래된 기종들이 손이 많이 간다. 오래됐지만 개성 있고 우수한 소리를 내주는 기종들이 몇 있다. 맛 좋은 오래된 포도주에 빗대서 '빈티지'라고 부르는데 이런 건 확실히 단종된 제품들이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고치게 된다."
- 어떤 브랜드가 빈티지인가.
"다양하다. 맥킨토시나 알텍, 마란츠 등 오디오 명가들에서 수십 년 전에 나온 모델들을 지금 쓰는 사람들도 있다. 빈티지는 들어보면 '아. 좋구나' 하고 바로 안다. 최신형에 견줘봐도 손색이 없는 소리를 내지. 그렇다고 무조건 오래된 기종이 빈티지는 아니다. 그냥 오래된 건 '올드모델'이지."
- 본인은 '빈티지'인가 '올드모델'인가."빈티지가 되어야지(웃음). 사람들이 나를 처음 보면 나이가 72세니까 눈도 어둡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렸을 때 나이든 선배들 그렇게 봤으니까. 그래서 수리하는 감각, 일하는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아침마다 헬스도 40분씩 하고 새로 나오는 오디오들이 가진 기술과 철학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한다. 팔다리가 움직이는 한 계속 이걸 하고 싶으니까. 안 그러면 '올드모델'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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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팔십 먹어서도 이 황홀감 느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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