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두씨와 부모님소현두씨는 그의 부모님들이 궂은일을 함께 해줘서 꽃집을 하는데 든든하다고 했다. 왼쪽은 어머니 정순영씨, 중간은 소현두씨, 오른쪽은 아버지 소강영씨다.
송상호
7년의 인고 세월이 꽃집 열게 해그가 지난달 초순쯤에 자신의 꽃집을 개업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7여년 세월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그가 7년 전 친구 소개로 우연히 시작한 꽃집의 일꾼 역할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현두씨는 안성의 한 꽃집에서 그 집 사장의 손발이 되어 머슴처럼 열심히 일했다. 농장에 직접 트럭을 몰고 가 물건을 떼어오는 것도, 거래처를 관리하는 것도, 무거운 화분을 옮기고 정리하는 것도, 회계장부를 관리하는 것도 대부분 현두씨가 맡았다. 배달이 밀리거나 일이 많을 땐,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해야 했던 이유? 그가 모신 사장이 시각장애인(시력이 약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장은 그를 신뢰했고, 그는 사장이 신뢰할 만큼 성실히 했다는 이야기다. 사장은 꽃을 직접 다루어 팔고, 나머지 일은 그가 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 시절엔 개인적인 시간을 잠깐 낼 틈도 없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그만두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나 바빴으면 데이트는 고사하고, 아가씨를 만날 시간조차 없었을까.
하지만 3년이 넘어가면서 길이 보였다. '그래, 나도 꽃집을 한 번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한 건 사장이 해야 할 중요한 일(물건 거래, 거래처 관리, 고객 관리, 금전 관리 등)을 현두씨가 처리하면서 부터다. 꽃집 사장의 수족노릇을 하던 현두씨는 거기를 그만두면서 "정말 죄송했다"라는 말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