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5일 새누리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뒤편에 정몽준 전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널리 알려졌다시피 정 후보와 박 대통령은 장충초등학교 동창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서로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테니스'였다. 그는 지난 2011년 펴낸 자서전(<나의 도전 나의 열정>, 김영사)에서 "박 전 대표를 알게 된 것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 어느 테니스 모임에서였다"라며 "그 후로 여러 번 운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테니스 모임 사람들과 여수 등지의 지방에 가기도 했고, 박 전 대표의 생일축하 자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정 후보가 지난 2012년 대선출마를 염두에 두고 펴낸 그 자서전에는 두 사람의 '차가운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실려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얼굴을 붉힌 이유'라는 제목이 달린 장에서다. 당시 자신의 대권 경쟁자였던 박 대통령을 흠집내려는 의도가 엿보일 정도로 그 일화들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먼저 지난 2002년 9월 초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남북한 축구경기가 열렸을 때다. 박 대통령이 같은 해 5월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 축구팀의 남한 방문을 제안해 성사된 경기였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일'이 벌어졌다.
"상암동 경기장에 도착하니 (중략) 태극기를 든 사람들과 한반도기를 든 사람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박 전 대표는 (중략)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 (중략)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나의 도전 나의 열정> 243쪽)
이날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힌 일은 더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정 후보에게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라고 항의했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만을 외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 후보는 자서전에 "훗날 박 전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에 나는 약속을 잘 안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이 일화는 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당시 강력한 대권경쟁자였던 박 대통령을 '색깔론'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가 언뜻 보인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또한 정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에도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힌 일'들이 일어났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 박 대통령과 국회 커피숍에서 50분간 만났다. 회동을 끝내고 나오는데 기자들이 '박 전 대표가 10월 재보선을 도울 것인가?'를 물었다. 이에 "박 전 대표도 마음 속으로 우리 후보들이 잘 되기를 바라시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몇달 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이 없다"라고 항의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나라당 당원이라면 누구든지 한나라당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더구나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따옴표를 붙여 본인의 말을 인용한 것도 아니고 나의 생각을 덧붙인 것인데 왜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를 내는 박 전 대표의 전화 속 목소리가 하도 커서, 같은 방에 있던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에 아주 민망했다."(241쪽)박 대통령의 결벽증이 지나치다는 것을 꼬집는 일화로 읽힌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정 후보의 또다른 발언을 걸고넘어졌다. 며칠 전 세종시 특위문제로 박 대통령과 통화한 뒤 한 회의석상에서 "박 전 대표가 제 특위 취지 설명에 '알았다'라고 말했다"라고 전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가 이를 언론에 전달했는데 박 대통령이 세종시 특위 구성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전후 사정을 따져보지도 않고 대뜸 '전화하기도 겁난다'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오전 9시의 최고위원회의 직전인 데다 그만한 일로 싸울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좋게 넘어갔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통화 직후 이런 얘기를 본인이 직접 기자들에게 공개해버렸다. 졸지에 나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241쪽)정몽준, 박근혜 정부 권력실세 김기춘과도 '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