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딸에게

투표하지 않는 것은 불의한 정권을 돕는 것이다

등록 2014.05.29 22:20수정 2014.05.30 10:11
2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랑하는 딸 현경아, 5월 하순을 흔히 만춘(晩春,늦은 봄)이라고들 하지만 오늘은 한여름 날씨구나. 섭씨 30 도를 오르내리는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혹독한 겨울 날씨와 찌는 듯한 여름 날씨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늘 서민이다. 그래도 우리 서민들은 굳세게 이런 기상을 극복해 왔다. 서울에 올라가 혼자 생활하고 있는 너도 이 대열에 속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 세상의 주류 군상(群像)이란 생각에 나름 안도하게도 된다.


6월 4일은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지방 선거의 날이다. 아빠와 엄마에겐 반복되는 선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너에겐 의미기 결코 적지 않은 선거일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태어나고 처음 치르게 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서 고향을 내려 올 생각까지 했던 네가 대견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 편 경비와 시간을 들여 굳이 집에 와야 하는 건지 혼돈이 오기도 했다. 이것은 서민 삶의 애환(哀歡)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번 선거부터 사전 투표제라는 게 생겨 주소지까지 오지 않더라도 생활하는 곳 어디서든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구나. 그게 바로 내일과 모레 양일간(5월 30일, 31일)이라고 한다. 너와 같이 객지에 사는 사람을 위한 제도가 아닌가 싶다.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적 부가 축적되어 풍족한 삶을 사는 국가일수록 선거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구나. 개인주의의 영향일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져 국가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여야 합의로 사전 투표제도를 마련한 것도 투표할 시간적 여유를 더 준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일은 대통령 선거와 총선과는 달리 법정 공휴일이 아니어서 그만큼 투표 열기도 높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젊은이들은 투표보다는 선거일을 이용해 개인적 시간을 즐기려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그 통로가 바로 투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나의 딸 현경아! 갑자가 40여 년 전 아빠의 과거가 떠오르는구나. 그 때는 박정희 유신독재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이었지.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빠는 첫 투표권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당시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투표로 뽑는 것이 아니라 무슨 통일주체국민회읜가 뭔가를 선출해서 그들의 투표에 의해 대통령이 정해지는 제도였다. 그러니까 간접 선거라고 할 수 있겠지. 여야가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 선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은 한 사람 박정희를 두고 찬반 투표를 하는데 절대 다수(99.9%)의 찬성으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

이렇게 당선된 대통령 아래서의 국회의원 선거도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제도였단다. 대통령은 당시 국회의원 정수의 1/3을 지명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일괄 상정 찬반을 물어 선발했으니 대통령의 월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지. '짐(朕, 대통령)이 곧 국가'인 세상이었지. 이렇게 뽑힌 국회의원을 유신정우회(유정회) 의원이라고 따로 불렀단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국회의원 2/3도 모두 친여 성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야당이 있긴 했지만 여당의 2중대 3중대로 불려 그야말로 들러리 격에 지나지 않았지.


이런 상황에서 투표를 한다는 게 불의한 독재 정권을 돕는 격이 되어 의식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투표를 하지 않았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고 독재의 기미가 우리를 알게 모르게 에워싸고 있지만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깨어 있을 때, 가진 자가 권력을 함부로 농단할 수 없게 된단다. 깨어 있는 국민의 제1조건은 투표를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아빠는 확신한다. 나는 국가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젊은이가 중심에 바로 설 때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사고는 진취적이고 나이 든 연배는 정태적이다. 젊은이들은 다소 모험이 될 일도 자아 및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시도하지만, 나이 든 장노년 층은 변화를 싫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젊은 층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은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무척 좁은 게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의사를 표현하는 길은 선거에 있어서의 투표가 유일하다. 이번 6.4 지방선거를 포기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저간의 상황을 고려해서 이틀간의 사전 투표제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권도 하나의 권리라고들 흔히 말하지만 이것도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싹이 짓밟힌 나라 혹은 역으로 그것이 고도로 발전한 국가에서나 통할 수 있는 말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민주주의가 우리보다 앞선 몇몇 선진 국가에서는 기권을 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제도도 강제성이 있는 것이라 찬성하기 어렵지만 스스로 알아서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

태어나서 처음 투표를 하는 딸 현경이의 마음이 많이 설렐지 모르겠구나.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게 투표할 것을 권하기 바란다. 이번 지자제 선거부터 적용되는 사전 투표제도 적극 홍보해서 젊은이들의 바람이 정치에 많이 반영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투표를 하고 안 하고의 여부가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올바로 했을 때 그 이득이 국민 개개인에게 꼭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말이야.

이것은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명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단체든 중앙정부든 국민의 생명을 가장 소종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죽음 앞에서 국가가 그리고 내가 소속된 지방자치 단체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표로 이어질 때 민주주의도 한 단계 성숙하는 것이 아닐까? 너의 건투를 빈다.

                            2014년 5월 29일, 김천에서 아빠가
#6.4지방선거 #사전투표 #첫투표권 행사 #기권 벌과금 #투표 독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81분 윤·한 면담 '빈손'...여당 브리핑 때 결국 야유성 탄식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4. 4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5. 5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단독] 명태균 "검찰 조사 삐딱하면 여사 '공적대화' 다 풀어 끝내야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