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는 성폭력피해자에게 무고죄를 적용하여 법정 구속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판결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07년 어느 날, 임대 광고를 보고 찾아간 피해자가 집주인에게 강간 피해를 입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피해 직후 고소하지 않고, 피해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뒤 고소했다는 이유로 고소 동기와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추궁했다. 가해자로부터 성폭력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협박까지 받은 피해자는 결국 스스로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얼마 뒤 피해자는 무고죄로 기소되었다.
검사는 "강간 피해를 입었다면 바로 신고했을 텐데 왜 당장 고소하지 않았느냐", "집을 임대해주지 않아 화가 나서 고소한 것이 아니냐", "만약 집만 임대해줬다면 고소는 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의심했다.
피해 이후 피해자가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도 의심의 근거가 되었다. 집을 빌리지 못하면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지 모르는 현실 때문에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가해자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애초 임대할 집이 없었음에도 피해자를 집으로 불러,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의도에 대해 검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은 거짓말'이라고 치부한 반면 피해자의 고소에 대해서는 '큰 거짓말'이라 지칭했다. 이 검사는 '가해자가 임대할 집이 없었더라도 앙심을 품고 큰 거짓말을 하는 것은 엄청난 죄'라며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의 변을 밝혔다.
목격자나 증거가 부족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피해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무고죄 유무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혹여 피해자가 전과나 성적인 경험이 있거나, 가해자에게 합의금에 대해 언급했을 때 소위 '꽃뱀'이라는 의심을 사기 쉽다.
개개인의 성향이 다양하듯, 성폭력 피해 이후 당차게 일상생활을 하는 피해자들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피해 이후 가해자와 문자 등으로 연락을 지속했거나,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고 있으면 '성폭력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잘못된 통념이 작동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 상황에 처한다.
2011년,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오히려 무고죄로 실형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다. 당시 수사관은 "술에 취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강간당한 상황만 기억이 날 수 있냐", "왜 반항하지 않았냐"며 피해자의 진술 자체를 의심하였다. 수사관은 거짓으로 진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심한 모멸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낀 피해자는 고소를 취하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줄 알고 고소를 취하했다.
그런데 이후 피해자는 검찰의 출석요구에 성폭력 피해에 대한 추가 조사를 받는 줄 알고 응했다가 자신이 무고 피의자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겪는 2차 피해의 괴로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소를 취하한 행동이 검찰에게는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무고 혐의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된 것이다.
성폭력은 주로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을 동반하기보다 상대의 동의 의사 없이 강제적으로 일어난 피해가 많다. 따라서 검사가 폭행과 협박이 동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를 허위로 판단하고 무고로 기소해서는 안 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근거하여 검사는 무고 사실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판사 또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는지 판단하여야 한다.
'성폭력피해자다운 사람'이란 통념을 버려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