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산 편백숲. 연녹색의 숲바다를 만날 수 있는 숲이다.
이돈삼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처참하게 죽어간 아이들의 앳된 얼굴만 아른거린다. 날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재난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단 한 명도 구조를 못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무뎌져만 간다. 가슴이 아프다. 나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
차를 몰았다. 무기력에 빠져 있는 내가 싫어서다. 봄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늑장을 부린 탓에 멀리 가기엔 부담스런 시간이다. 혼자만의 여유를 갖기 위해 한재골로 간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이팝나무가 눈에 부시다. 지난 17일이다.
담양 한재골은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 어릴 적 추억이 골골마다 서려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즐겼고, 학창시절엔 단골 소풍장소였다. 부모를 따라 땔감을 하러 다니던 곳이기도 하다.
하여, 심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게다가 싸목싸목 자박자박 걸을 만한 숲길도 있다. 병풍산 편백숲 트레킹 길이다. 길이 담양과 장성에 걸쳐있는 병풍산(822m)의 허리춤을 따라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