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걸터앉은 단풍나무 평상2013년 9월 6일, 인천 구월동 단풍나무 평상에 걸터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
이승훈
인천 구월동 구빌라 숲을 누비다가 눈에 들어온 단풍나무 하나. 사방이 노후한 빌라로 가로 막혀 빛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녹음이 푸르렀다. 찌는 날씨에 지친 우리는 그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할머니 한 분 한 분 이곳 평상으로 모여들었다.
여름 이맘때쯤 이 시각이면 항상 이곳에 모인다고 했다. 사는 이야기, 먹을 것, 아들 딸 자랑, 손자 손녀 자랑을 하면서 논다고 했다. 멀리 있는 데다가 시끌벅적, 담배연기로 뿌연 경로당보다는 이곳이 놀기에는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셨다.
단풍나무와 평상으로 인해 삭막하고 누추한 빌라 동네가 생기발랄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곳에 누가 이런 단풍나무와 평상을 심었던 것일까.
"이 나무는 언제부터 심어져 있던 거예요?" "이 앞 빌라에 살던 할매가 여기다가 요만한(손가락 검지를 보이시면서) 단풍나무 모종을 갖고 와서 심었어. 근데 그놈이 글쎄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니까 이만해진거야.""그럼 이 평상도 그 할머니가 만드신 거예요?"평상은 할매네 아들이 동네 할매들이랑 놀라고 이렇게 밑에다가는 큰 대야를 몇 개 집어넣고 위에다가는 판자때기 덮고, 장판 깔아 줬어. 근데 그 할매가 지난해에 가버렸지, 가버렸어…" 우리는 이 소박한 이야기에 크게 감명 받았다. 생명에 대한 감탄도 있었지만, 모종을 심어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었다는 이야기, 어머니를 생각해 동네 어르신들과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평상을 만들어 준 아들의 이야기는 우리시대에 접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애잔한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