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운종가조선시대 종로는 사람과 재화가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진다는 의미로 운종가로 불렸고, 이곳에는 국가 경제를 주물렀던 시전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철재
골목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다 보니, 주거지로 사용되던 골목에 자연스레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이 만들어졌다. 좁고 긴 널빤지로 만든 상에 탁주를 파는 선술집, 즉 목로(木壚)주점이 들어섰고, 허기를 달래주는 국밥집도 만들어졌다. 해장용으로는 막걸리에 8가지 한약재를 넣고 만든 모주(母酒)가 제격이기 때문에, 어느새 골목에는 모줏집도 들어섰다.
운종가 큰길 양편을 조선시대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시전(市廛)상인들이 점령했다면, 피맛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서민들의 골목 문화가 형성됐다. 피맛길은 교보문고 뒤편부터 종각역, 이어 YMCA 뒷골목에서 종로3가역을 거쳐 돈화문로까지 이어졌다. 맞은편에도 조선시대 궁궐의 개폐시간을 알려주는 종루(지금의 보신각. '종로'라는 이름은 여기서 기인했다)부터 흥인문(동대문)까지 골목이 길게 이어졌다.
햇살이 따가운 지난 23일 피맛골 탐방에 나섰다. 예전 피카디리 극장 골목에는 군데군데 대로변처럼 귀금속 상가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풍경이 눈 안에 자리 들어왔다. 빙빙 돌아가는 이발소 간판 사이로 '이발 3500원, 염색 5000'이란 글자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