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 강씨(이일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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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이 집안은 개경을 떠나 황해도 곡산으로 이사했다. 곡산은 황해도 동북부 지역으로서 함경도와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 곡산으로 이주한 것이 결과적으로 강씨와 이성계의 만남을 가능케 했다.
강씨와 이성계가 어떻게 만났는지를 궁금해 한 학자가 있다. 바로 18세기의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조사 결과가 담긴 <다산 시문집>에 따르면, 이성계는 고향인 함경도 영흥과 개경을 오고갈 때마다 중간 지역인 곡산을 통과했다.
1370년경의 어느 날이었다. 30대 중반인 이성계는 이날 곡산에 들렀다가, 목이 몹시 말라 개울가에 있는 10대 중반의 아가씨에게 물 한 모금을 부탁했다. 이 아가씨가 바로 강씨였다. 그런데 강씨의 행동이 이성계의 신경을 자극했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바가지에 물을 뜬 뒤 버들잎을 띄우는 게 아닌가.
<다산 시문집>에 따르면, 이성계는 버럭 화를 냈다. 아마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요?"라고 말한 모양이다. 그러자 강씨는 "급히 드시면 체할 것 같아 그랬습니다"라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 대답이 이성계를 감동시켰고, 이걸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다.
현행 대한민국 민법 제810조에는 "배우자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한다"라는 중혼(重婚) 금지 규정이 있지만, 고려시대만 해도 일부다처가 허용됐기 때문에 이들의 결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결혼이 계기가 되어 강씨는 이성계와 함께 개경으로 이사하고, 강씨 가문도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되었다.
21세 연상의 남편과 살게 된 강씨는 아내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특히 이방원의 과거시험 공부를 잘 뒷바라지했다. 영흥에 사는 첫째부인 한씨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강씨보다 11살 적었다. 나이로만 보면 강씨는 큰누나 같았지만, 이방원의 어머니 겸 선생 겸 선배의 역할을 잘 해냈다.
이방원은 열일곱 살 때인 1383년에 과거시험에 급제했다. 평균적인 선비가 서른이 넘는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방원은 상당히 빠른 나이에 합격한 셈이다. 이때는 강씨가 이성계와 결혼한 지 13년 정도 지난 뒤였다. 강씨의 뒷바라지 속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이방원은 강씨를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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