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침묵 시위를 제안한 용혜인씨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김민
경기 안산 출신의 대학생 용혜인(25)씨도 지난 18일,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시위는 용씨가 제안해 시작된 '가만히 있으라 침묵 시위'였다. 침묵 시위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여섯 글자 속에 세월호 참사 원인이 있다 보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시위다. 그의 제안으로 지난 3일, 서울 홍익대학교 앞에서 첫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34주년 기념일로 세번째 진행된 시위였다.
이날 용씨는 동화면세점 앞에서 "박근혜 정부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답하실 분들, 청와대로 가자"고 외쳤다. 이에 시민들이 부응했고 광화문 광장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경찰에 가로 막혔다. 세 차례의 해산 경고에 불응하자 경찰은 체포하기 시작했고 용씨도 여경의 손에 서울 은평경찰서로 잡혀갔다. 그리고 지난 20일 오후, 연행된 지 44시간이 지나서야 풀려나왔다. 구금 기한인 48시간을 3시간 여 앞둔 시간이었다.
그는 2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대규모 연행은 일선 경찰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며 "위선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이고 세월호 추모에 대한 박근혜의 대답"이라며 "경찰이 계속 연행한다고 해도 시민들은 멈추지 않아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뒤에서는 시민을 연행하고 유가족을 미행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고를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빗대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34년 전 일어난 광주 민주화운동이 우리의 역사가 된 것은 시민이 광주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300명이 넘는 이들이 죽거나 사망한 이 사건을 역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잊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경찰이 어떻게 대응하든지 관계없이 계속해서 침묵 시위와 행진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용씨와 함께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가만히 있으라' 침묵 시위 처음 제안했던 이유는 무엇인가?"'가만히 있으라'는 말 한마디가 세월호 참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이 말의 함의가 크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교육을 받았다. 이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생명보다 돈이 중요한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이 중요해서 낡은 배를 운행 연장시키고 화물 더 싣기 위해서 증축했던 것이다.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서 침묵 행진을 제안 드렸다."
- 연행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당시, 침묵 행진이 끝나고 18일 오후 7시가 넘었을 때다.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박근혜 정부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답하실 분들은 청와대로 가자'고 외쳤다. 시민들이 모였고 동화면세점에서 광화문 사거리 세종대로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경찰 병력에 가로 막혔다. 대치가 이어졌고, 3차례 해산 명령 뒤 연행하기 시작했다."
- 경찰의 연행 이유는 무엇이었나."집시법 가운데 경찰의 해산 명령 불응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경찰은 우리가 인도에 있는데, 인도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계속 해산 명령을 내렸다."
"연행 과정에서 남자 경찰의 성희롱 직접 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