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근대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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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신들의 선조에 의한 '신대륙 발견'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라도 사실의 진위와 무관하게 아메리카에는 역사가 없어야만 했다. 따라서 아메리카의 문명이 '4대 문명'과 함께 세계사 속에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 것은 유럽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당대의 모든 학문을 총동원하여 유럽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자칭 '계몽주의 시대', '이성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8세기 이후에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도 아무런 의심 없이 유럽, 특히 서유럽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배우며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에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의 역사는 4대 문명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와 로마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의 '진보'에 이르렀다는 너무나도 익숙한 레퍼토리가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1000년의 역사를 지배해온 이슬람사회는 본질적으로 유럽에 속했던 과학을 일시적으로 보존하였다가 십자군전쟁 후 다시 유럽에 건네주고는 소리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유럽이 호명하지 않으면 역사에 등장하기조차 힘든 타자일 뿐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전체주의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1963)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언급하며, 그 원인으로 '생각 없음'(thoughtless)을 지적하였다.
특히 정치철학자로서 아렌트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의 죽음 이후, 서구 철학의 전통은 철학과 정치를 스스로 분리시킴으로써 소크라테스가 실천했던 사회적 역할, 즉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산파적 기능을 외면하였다고 진단하였다.
이러한 아렌트의 논조를 염두에 두고 진솔하게 우리 자신과 지금의 현실을 대면해 보자. 어떤 연유에서든 우리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유럽에 의해 '날조된' 세계사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생각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관점을 지금까지 비호해 왔다는 부끄러운 사실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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