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TAUM'이라고 적힌 상호
화면캡처
'ARITAUM'이라고 적힌 간판이 있다. 전국의 웬만한 도시의 거리에는 다 있다. 물론 어느 화장품 판매점 상호다. 우리나라 유수의 화장품 제조회사에서 운영하는 '뷰티 체험 공간'이기도 하단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다가 심심풀이로 'ARITAUM'을 두드려 보라. 그 아래 빨간 밑줄이 그어질 것이다. 사전에 없는 국적불명의 단어니까 제대로 바꿔 쓰라는 뜻이다.
'ARITAUM'을 병음으로 한 번 읽어보라. '아,리,타,움'이다. 아, 알겠다. '예쁘다'의 다른 말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가리켜 주로 쓰는 '아리따움'을 영문자로 바꾼 것이다. 순우리말을 그대로 살려서 간판에 '아리따움'이라고 쓰면 구식이어서 촌스러운가. 반뷰티적인가?
'LH'(그 옛날의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합쳐진 이름)는 공기업 중 하나다. 과거 주택공사에서 짓는 아파트 이름은 무조건 지명을 따서 ○○동 주공아파트였다.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이름이 있다. '뜨란채'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뜰 안채'에서 따온 게 분명하다. '뜰 안채'…. 정감 있지 않은가.
'뜰안채'라고 써도 무방할 텐데 굳이 그 말을 우그러뜨려서 국적 불명의 '뜨란채'를 쓰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아파트 이름으로 그대로 쓰기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다. 어설프게 외국어 흉내를 내자는 것일 게다. 'LOTTE CASTLE'이니 'CENTRAL PARK'니 'POSCO THE #'이니 'IPark'니 하는 굴지의 건설회사 아파트 이름에 밀리지 않겠다는 것일 게다.
'농협 하나로마트'를 가 봤을 것이다. 우리 농산물 판매를 촉진시켜서 농촌 살리기에 앞장서겠다는 취지로 설립했단다. 재벌 기업이나 외국계 대형마트와 차별화를 이루겠다는 기치까지 내걸었단다. 그곳에 가면 '뜨라네'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우리 농산물 대표 브랜드란다.
'뜨라네'의 어원은 당연히 '뜰 안에'일 것이다. 이 또한 '뜰 안에'나 '뜰안에'라고 이름을 붙이면 잘못된 건가. 소똥 냄새 풍긴다고 매장에 손님들 발걸음이 뚝 떨어지기라도 하나. 가만 보니 이 '뜨라네'는 '뜨란채'와 짝짜꿍을 잘도 맞추었다.
하긴 'ARITAUM'처럼 'TRANCHAE'나 'TRANE' 따위의 어설픈 영문자로 바꿔 쓰지 않은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다.
'화니피는 꽃'이라고 적어서 간판으로 내건 꽃집도 있다. '환히 피는 꽃'을 일그러뜨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환히 피는'을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화니피는'이 되기는 한다. 그러니 이렇게 써도 괜찮다는 건가. 굳이 그렇게 바꿔 써야 꽃집다운 '간지'가 나는가, '포스'가 생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