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 사진전 작품 중 하나. '양복 입은 교수가 눈에 뛴다'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
5.18 기념 재단
'깨어나라 민주주의여!'란 주제로 약 200여 명의 시민과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 날 행사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오월 영령에 대한 묵념,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합창, 추모음악 공연 등으로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추모식을 주최한 5·18구속부상자회 대구경북지부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평소보다 소박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지부장인 이상술씨의 기념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나타난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5·18 정신의 훼손과 방관으로 비롯된 것으로 성찰과 반성에 의한 친일, 독재 역사청산"을 강조했다.
80년 대구에선 무슨 일이? 이날 만났던 5·18구속부상자회 회원들은 하나 같이 "그날 광주로 인해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 비상계엄 철폐, 전두환 군부독재 퇴진을 요구하며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다. 군부 정권에 의한 구타, 고문 피해자들도 상당하다. 그날의 '동지', 그날의 '영웅'들이 해마다 5월에 모여 광주를 방문하고 대구에서 5·18 민주화 운동 추모식을 주최한다.
현재 5·18구속부상자회 사무처장인 변대근씨는 80년 당시 계명대학교 학생대표였다. 2011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5월 14일 계명대학교 학생 500여 명이 대구백화점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던 중 골목마다 지키고 있던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진압 당했다.
전경이 아닌 포항에 있던 해병대가 경찰복장을 하고 진압을 해서 많이 다쳤다고 한다. 200여 명 정도가 50사단 연병장에 끌려갔고 군인들은 학생들을 좁은 실내에 몰아넣은 뒤 최루탄을 터트리고 심한 구타를 했다. 소식을 들은 경북대와 영남대, 그리고 계명대 후발대 학생들이 시내로 나오면서 시위는 점점 과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