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감독 다큐멘터리 <전봇대, 당신>. KT에서 38년을 일하다 정년퇴직한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진우
"퇴출 대상으로 찍혔던 아버지는 지금도 회사를 원망하지 않는다."KT 퇴직자 아들이 찍은 다큐멘터리 <전봇대, 당신>(이진우 감독)이 화제다. 38년 동안 KT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아버지의 삶과 회사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지난 4월 16일 폐막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2014'에서 관객 투표로 뽑는 '관객상'을 받았다.
연수원 교수에서 현장으로... 명퇴보다 잔인한 '잔류자'의 고통이진우 감독 아버지 이만구(62)씨는 1972년 체신부 공무원으로 출발해 1990년대 중반까지 KT 중앙연수원(현재 KT 인재개발원)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는 사내 교수로 일했다.전 직원이 6만 명에 이르던 시절 사내 교수는 4명뿐이었고, 승진에 유리한 '요직'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민영화 이후 승진에 탈락한 이씨는 비연고지로 발령받은 뒤 영업직과 이른바 '전봇대' 업무를 전전하며 퇴출 압박에 시달리다 지난 2010년 12월 정년퇴직하기에 이른다.
이 감독은 촬영 도중 아버지가 회사의 이른바 '퇴출 프로그램(CP 프로그램)' 명단에 포함된 사실도 알게 됐다. 한때 근무 평점에서 A를 받아 '평균 이상'이란 평가를 받던 아버지였지만 2003년 55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명예퇴직 '압박'을 거부한 뒤 평점이 'C'로 곤두박질쳤다.
아버지는 연수원 시절 추억이 담긴 자료들와 함께 당시 회사에서 받은 '경고 통지서'들도 빼놓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대상이었나" 기억할 목적이었다는 이씨지만 대놓고 회사를 원망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