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관 사진작가
김영숙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사진 찍고 정리하는 데 시간을 씁니다. 어디를 잘 다니지 않아요. 인터뷰나 방송에도 많이 안 나가는 편이어서, 나를 보려면 좀 어렵지요."첫 인상이 조용한 성직자 같았다. 말소리가 워낙 낮고 작았으며, 느낌이 최소한의 말만 허용하고 묵언을 수행하는 고행자 같았다. 자신을 적극 알려야 하는 시대에 오히려 그런 기회를 거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작가는 작업에 몰입하는 게 당연하죠. 작품 활동을 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그런 거 할 시간이 없어요. 작품 활동은 혼자 조용히 고독하게 하는 거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사진가의 길을 가는 게 작가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라져가는 내 고향과 어머니의 삶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전혀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그는 개관 전날이라 바쁜데도 오전에 사진을 찍고 왔다고 했다.
"거의 밤에 작업을 시작해서 새벽까지 하니까 시간이 불규칙하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사진가의 길을 택해서 다른 일에 관심도 없고 구애받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이 길을 택했죠. 폼 잡기 위한 것도 아니고요."민간인 최초로 휴전선 155마일로
최 작가는 테마 스물여덟 가지를 정해놓고 작업을 해나간다. 예를 들면, 비무장지대(DMZ)나 갯벌, 염전포구 등이다. 그 카테고리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특히 비무장지대는 그에게 남다르다.
포털 사이트에 '비무장지대 사진작가'라고 치면 그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볼 수 있다. DMZ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부터다. '건군·건국 50주년 국방부 육군본부 작가'로 위촉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민간인 신분으로 2년여에 걸쳐 DMZ 155마일을 왕복 세 차례나 횡단하며 사진을 찍었다. 발목지뢰를 밟았다가 수색대원이 제거해줘 간신히 살아나기도 했단다. 한번은 차가 미끄러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나무가 지탱해줘 목숨을 건졌으나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1998년 9월부터 10월까지 용산전쟁기념관에서 '회한과 긴장 그리고 소망의 땅 휴전선 155마일'이란 주제로 전시했다. 유엔 초청으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2010년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한국의 DMZ, 평화 생명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전시회도 열었다.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전시회 개최로 국내보다 외국에 더 알려진 최 작가는 여전히 '남동구'와 '어머니'에 대한 시선 그리고 그리움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으로 바치는 사모곡이번 전시회 제목은 '어머니의 실크로드'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최 작가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 일곱을 남겨 놓고 최 작가가 중학교 1학년 이던 때, 세상을 떠났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 7남매를 혼자 책임져야했던 어머니는 허구한 날 끼니를 거른 채 새벽부터 밤까지 밭일과 행상에 매달려야 했다. 첫 기차를 타고 장터로 간 어머니는 해가 오봉산 너머로 숨은 뒤에야 돌아오곤 했다.
소래에서 시흥으로 이어진 다리를, 작가는 '어머니의 다리'로 부른다. 자식 일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겹게 장사를 다니던 삶의 고단함과 애절함이 녹아 있는 그 다리를 카메라 렌즈로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어머니는, 고행의 길이었지만 그 길을 다니며 고생하면서 자식들에게 실크로드를 만들어 준 거지요."30대 초반, 그가 사진가의 길을 결심한 이유도 어머니와 고향이었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깊고 큰 사랑을 조금씩 깨달았다. 영원할 수 없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고단하게 살아온 고향땅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 고향이 사라진 지 10년, 그리고 사진을 시작한 지 30년이 된 지금, 이번 전시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
"어머니는 제 종교이자 신앙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어머니는 제 믿음과 사랑과 신뢰지요."최 작가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난 죽으면 까치가 될 거다, 네 창문 앞에서 까치가 울면 어미인 줄 알고 창문을 열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는 동물 사진을 안 찍는데 출판사에서 까치 사진을 꼭 넣어야 된대요. 근데 까치가 얌전히 앉아 있나요? 당장 다음날 출판사에 보내줘야 하는데 날아 다니는 까치를 보면서 걱정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생태공원에 갔는데 까치 한 마리가 앉아서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속으로 '어머니가 나 찍으라고 오셨나 보다' 생각했는데, 참 신기했어요."찰칵 하는 순간에 작품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