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매일같이 홍대입구역에서 노란 리본을 달던 친구도 있었고, 시청 분향소에 다녀온 친구도 있었다.
이하나
나의 이 순진한 믿음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깨졌다. 휴대폰을 꼭 쥐고 구조 속보를 기다렸지만 단 한 명이라도 승객이 구조되었다는 속보는 날아들지 않았다(심지어 사고 발생 22일째인 7일 해경은 최초 구조된 승객이 174명이 아니라 172명이라고 정정했다. 동일인이 이름을 다르게 기재했고, 한 구조자가 동승자가 없었으면서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란다. 그 덕에 실종자는 2명 더 늘어난 35명이 되었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때부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카페에 찾아온 손님들도 모두 세월호 이야기뿐이었다. 종교도 없는 내가 기도를 하고, 뉴스를 읽다가 불쑥불쑥 흐르는 눈물에 당황스럽고 죄스럽기까지 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카페를 같이 운영하는 친구는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며 SNS를 하고 있던 자신도 그 참사에 책임이 있는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하도 답답해 카페에 찾아온 한 친구는 이제 그 이야기 그만하면 안 되냐며, 너무 아프고 우울하다고 했다.
쏟아지는 감정들이 버거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그 소중한 목숨들이 허무하게 갈 줄 알았다면 사고 소식을 들은 날 팽목항으로 달려가기라도 할 걸 그랬다. 뉴스만 보지 말고, 언론을 믿지 말고 도대체 무슨 사고가 일어난 건지 알아봤어야 한다는 자책마저 들었다. 살 수 있었던 생명들을 구해낼 수만 있다면 뭐라도 했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현실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는 계속 일상을 살아갔다. 먹고 살아야 하니 카페 문을 열어야했고, 의뢰받은 디자인 작업들도 계속 진행해야 했다. 밝고 환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 어두운 색깔만 고르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처참한 대한민국의 민낯... 검은 티셔츠 입고 만나러 갑니다
그러다 얼마 전 연휴 막바지, 같은 처지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어김없이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다. 해경이 주변에 머무르던 그때 배 안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의 마지막 15분이 담긴 영상 때문에 슬픔과 분노가 혼재하던 날이었다.
아픔과 분노를 달래기 위해 매일같이 홍대입구역에서 노란 리본을 달던 친구도 있었고, 시청 분향소에 다녀온 친구도 있었다. 촛불추모제에 다녀왔는데 "친구들을 살려내라"는 고등학생들의 울부짖음이 가슴 아파 울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뒤 자신만 탈출한 선장,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미는 언론과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묻는 기자, 구조는 제대로 하지 않더니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한다고 하자 신속하게 막아나선 경찰, 정치에 이용한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 옳은 말 한 번 하지 않는 정치인들, 공감하는 척도 못하는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