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7일 철학자 데리다와 김순기 작가가 파리근교 리조랑지(Ris Orangis)에 있는 데리다 자택에서 대담하는 모습이다. 45분.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영상작품으로 소개되었다
아트선재센터
두 사람의 만남은 김순기의 친구인 프랑스철학자 '낭시'의 소개로 이루어졌는데 산업이 예술을 통제하려드는 비상구 없는 시대로 들어서자 서양철학자과 동양작가가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때로 백 권의 책보다 한 번의 대담이 더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 두 지성인의 대담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예술마저도 자본화 되어가는 시대, 이를 헤쳐 나갈 길을 모색 중이던 김 작가가 던진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본이 미술시장을 잠식하는 세계화시대에 예술가의 미래가 있는가"였고 둘째는 "침묵이 진정한 예술의 통로가 될 수 있느냐"였다.
데리다는 미술에선 '고유성·희귀성·유일성'이 가장 중요한데 자본의 압력으로 이것이 박탈되고 예술이 '동질화·빈곤화·저급화'를 초래한다면 그런 미술시장은 경계해야 하고, 문화투자가 아니라 과잉투기로 왜곡될 수 있기에 저항해야 하고, 이를 막는 데는 작가만 아니라 수집가, 애호가, 전문가도 다 같이 동참해야 한단다.
동양에선 "의미 있는 말이 침묵을 만든다"는 말도 있고, 존 케이지는 침묵도 음악이라 했지만 침묵에 대한 김 작가 질문에 데리다는 "말의 손실을 막기 위해 침묵이 필요하다", "전문가는 침묵이 뭔지 안다"는 말로 침묵의 예술적 가능성과 그 가치를 평가했다. 결론으로 침묵이야말로 타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말한다.
좀 더 덧붙이면 수사적이고 웅변적인 세계화가 난무하는 시대에 더 많은 소리를 듣기 위해선 침묵이 필요하고 침묵이 보호돼야 한다고, 그리고 이는 또 하나의 저항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도 중국의 북경, 남경, 상하이 등을 여행한 경험담을 꺼내면서 서양보다 동양이 침묵을 더 중시하는 문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장-뤽 낭시와 대화(2002)] -
예술이란 물러나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