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향하는 길고향으로 향하는 길
고영수
나의 고향은 강원도 인제에서 30리 떨어진 갑둔리라고 불리는 두메산골이다. 30호 정도되는 가구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다.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하늘 아래 첫 동네' 라고 부른다. 집 뒤로는 크고 작은 산들이 있어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고,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한 편의 시나 그림이 되는 그런 곳이다. 그곳에는 자연이 주는 넉넉함과 평화로움이 있다. 나는 고향을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주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틈틈이 오미자와 머루, 다래 등을 채취하여 시장에 내다팔아 부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봄에는 산나물이 지천으로 돋아나고, 사시사철 철에 따라 야생화가 피어나는 천국의 화원과도 같은 곳이다. 봄철에는 모내기를 맞아 동네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품앗이를 한다. 여름에는 자두와 복숭아등 과일들이 풍성하다. 가을에는 온 들녘이 가을걷이 하는 풍경으로 장식된다. 겨울은 농번기 철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해동안 지은 곡식들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며 고스톱을 치면서 보낸다. 하루종일 가도 차 구경은 할 수 없으며 대중 버스는 중학교 들어가고부터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다니기 시작했다.
열 네 살 되던 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가게 되었다. 집에서 30리 떨어진 신남면에 있는 중학교로 유학을 하게되었다. 어머니는 학비며, 친구며, 객지에 나가서 생활을 잘하게 될 지 등 여러가지로 염려가 되신 것 같다. 나도 근심이 되어서 자꾸 물어본다. "밥은 내가 해 먹어야 되는 거야? 하숙은 아줌마가 밥을 다 해줘,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갈 준비하고 밥을 먹으면 되는 거야 그것을 하숙이라고 하지" 밤 늦도록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대화는 깊어만 갔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하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자취를 하는것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다. 하숙집은 나보다 세 살위인 형님이 1년동안 생활했던 곳이었다. 형님이 그동안 잘하고 있어서 그랬던지 하숙집 주인은 나를 끔찍히 생각해 주었다. 형님에 대한 칭찬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는 시쳇말로 멘붕에 시달리곤했다. 집생각에 그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달이 훤하게 뜨는 밤이면 고향 생각이 나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런 날이 2-3개월동안 반복되었다. 1년동안 하숙한후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하였다. 자취한 집은 가구 구조가 일자로 되어 있었다. 나의 방은 마지막 세번째 칸이다. 한 겨울에는 불길이 첫째방, 둘째방을 지나서 내방까지 전달되기 때문에 무척 추웠다. 불을 때도 방구석이 따뜻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주인집 할머니가 주시는 뜨거운 물이 그렇게 고마울 수 가 없었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지금쯤 이 세상을 떠나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