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임모 양의 아버지 임종호씨는 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사과를 하려면 초동조치가 안 됐을 때 해야 했다"며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비판했다.
남소연
임종호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분신 같았던 딸, 임세희양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됐지만 감정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고 초기 대응과 박근혜 정부를 말할 때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게 정말 나라인가', '박근혜 정부에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난 1일 세월호 침몰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다시 진도를 찾은 그는 정부의 초기 대응이 "형편없었다"고 평가했다. 허둥지둥, 오락가락하며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는 "현 정부에 무엇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며 "구호물자는 선진국인데, 구조 활동은 정말 이게 나라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21년 전에 일어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비교해 설명했다. 당시 지역 의경으로 사고 수습을 지원했다는 그는 "그때도 구조작업이 순탄치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을 보며 정말 마음이 아팠다"라며 "지금 와서 보니까 20년이 지났어도 달라진 게 없다, 너무 비참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이거밖에 안 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임씨는 "3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이런 대형 해양사고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다른 나라에 돈을 주고서라도 배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려면 초동조치가 안 됐을 때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임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진도체육관에서 열흘 정도 생활하셨습니다. 언론도 가족들을 힘들게 했고, 정부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떠셨나요?"제가 보고 느낀 것은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자들이 없었어요. 둘째 날에 팽목항에 가니까 해경 국장과 서장이 나와서 현장 지휘를 하는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무전기로 현장을 지시하는 모습은 안 보이고 핸드폰만 썼습니다.
사고현장에서 들려오는 얘기로 민간 잠수부들이 들어가려는데 해경이 막아서 못 들어갔다고 하는데, 저희는 현장에 없으니까 사실인지 거짓인지 몰랐습니다. 속만 타는 것이죠. 또 뭐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다고 하니까 더 난리가 났습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보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계속 나오니까 동요될 수밖에 없었어요. '빨리 들어가서 살려라', '살아 있는 사람은 살려내야할 것 아니냐', 그렇게 한 게 (사고난 후) 이틀째였습니다."
- 구조가 늦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실종자 가족들이 이제는 생존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는 모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고 3, 4일이 지나면서 그랬습니다. 학부모 회의하는데, 저부터 아이들이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초기 대응이 안 됐기 때문에... 나중에 해서는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초기 대응이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자식들이 살아 온 것도 아닌데 실종자 가족에게 미안해"
- 여기서 지낸 시간이 아주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왔습니다. 어떻게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을 하셨습니까? "제가 있을 때 점점 관심에서 소외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 남은 실종자 가족들도 더 이상 관심을 못 받고 소외되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먼저 아이를 찾았던 사람들이 미안해졌습니다. 근데 미안해할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 자식들이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닌데도, 미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해요. 여기 있는 사람에게 힘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희 데리고 올라갈 때부터 다시 내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제 학부모들이 모여서 한 얘기인데, 지금 당장 못 찾은 애들부터 찾아야하는 것 아니냐, 수색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할 게 뭐냐, 살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 자식 내가 알아볼 수 있을 때 꺼내달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