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문학관 이현식 관장
김영숙
한국문학의 놀이터를 만들다
"7년 전인가? 큰딸이 중학생이었는데, 국어 문학사를 공부하는데 근대문학 작품을 열심히 외우기만 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 때도 그랬어요. 맥락도 모른 상태에서 그냥 외우기만 했어요. 그러니까 재미도 없고 지겹다고 느꼈죠. 문학관을 생각한 건 그때예요."이현식(49) 관장은 근대문학을 쉽게 통시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근대문학관에는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이광수·최남선·한용운·김소월 등 근대문학 작가들의 초판본이 전시돼있다.
또한 사진과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근대문학 작품과 영상과 음악을 결합한 전시로 입체감을 살렸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도 '근대로의 여행'을 하게 했다. 문학놀이터인 셈이다.
"이런 식의 문학관을 만든 경험과 참조할 사례가 국내에 없어서 어려웠어요. 모든 게 처음이고 새로 시도하는 것이어서 지역 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해를 못하기도 했죠."국제도시 인천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이 관장은, 인천은 식민지 시대에 오랫동안 제국주의를 경험했고, 전쟁을 겪고 지금도 여전히 분단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인천이 국제도시가 되기 위해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했다.
"파리·런던 등 기존 도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을 확산하는 국가와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문학관 개관을 예정하고 '인천AALA문학포럼'을 기획했는데, 왜 돈을 들여 그런 사업을 하는가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죠. 성숙한 도시가 되려면 개방적이어야 하는데 보수적이에요. 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수적인 사고와 만나면 어렵습니다."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학포럼은 많다. 그러나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인들이 모여서 하는 토론은 인천AALA문학포럼이 유일하다.
"인천이 국제도시를 지향하잖아요. 국제적이라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 중요하죠. 더 중요한 건 이른바 서구로 대표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을 고려하는 거죠. 서구 문화는 우리한테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 있어요. 인천에는 국제공항도 있고, 이주노동자도 많습니다. 우리가 취해야할 다양성은 열려있어야 해요. 이 포럼을 기획한 의도입니다."이 관장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가 문명이 발달한 서구보다 오히려 진지하고 문학 본연의 정신을 더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책의 수도로서 면모 갖출 때인천은 '2015년 세계 책의 수도'로 지정됐다. 인천이 책의 수도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책의 수도는 한순간에 되는 건 아닙니다. 책을 읽게 만드는 문화는 책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달라져야죠. 세월호 침몰 사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이기보다는 성과위주의 '빨리빨리'문화가 만연해요. 문화행사를 하다보면 본 행사보다는 개막식 의전을 중요시하는 관행이 있어요."우리는 압축적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체득하지 못했다. 빨리 성과를 얻고 빨리 돈을 벌기 위해 변칙적 방법이 통용되는 사회라, 책을 읽는 분위기와 멀다고 이 관장은 진단했다.
"전반적으로 문화의 변화가 필요해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돌아봐야합니다. 그것의 강력한 무기가 독서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 나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되지요. 이번 사고는 안타깝지만 근본적 반성이 필요해요. 책 읽는 도시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인간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문학"문학과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사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이지요. 공학은 기능적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훨씬 근본적인 것을 공부합니다.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를 고민하죠. 나에게 이익이 되지만 선한 행동이 아니면 거부할 줄 아는 게 인간인데, 요즘은 옳지 않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면 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문학은 그런 걸 반성하는 기제를 갖고 있어요. 문학관을 만든 것도 문학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분위기의 확산이 국제도시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요?"한국근대문학관은, 이름은 근대문학관이지만 문학·인문학·출판 등의 허브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개항도시 인천을 책이나 출판으로 디자인하고, 전문가나 시민들에게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면 과거의 도시 기억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