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학생과 인솔교사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기도회가 안산지역 시민단체 주최로 열리고 있다.
권우성
그런데…, 지난주. 수학여행에 나선 열일곱, 열여덟 어린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했다. 믿기지 않도록 지독하고 무서운 악몽처럼. 세월호가 침몰한 첫날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TV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갇힌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힘없고 비겁한 어른'이라는 무력감에 슬픔과 우울함 사이를 반복해 오가던 그때. 배에 탔던 한 아이가 부모에게 남긴 메시지에 관한 보도가 나왔다. 글의 첫머리에 언급된 바로 그 내용이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앞서도 말했지만 깨달음에는 계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는 내 깨달음의 계기는 너무나 커다란 비극 속에서 왔다. 그것도 자그마치 43년 만에. 6년 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낸 게 후회된다.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엄마는 아직 살아 곁에 있으니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세월호 사망자와 실종자 모두는 한 명 한 명이 같은 무게의 금으로도 바꾸지 않을 자식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절망과 울음의 깊이를, 부모가 돼보지 못한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고래로부터 오늘까지 '사랑의 1순위'는 언제나 부모와 자식, 식구였다. 그들에게 "세상 모두와도 바꿀 수 없을 만치 사랑한다"고 말할 권리를 빼앗아간 그 무언가의, 그 누군가의 멱살이라도 틀어쥐고 싶다.
그리고, 사족처럼 덧붙이는 한 가지.
풍문처럼 들리는 이야기론 영국 귀족들의 평균 키가 눈에 띄게 작아진 건 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부터라고 한다. 대부분 장교로 지원하거나 징집된 귀족들은 가장 선두에 서서 평민 출신의 사병들보다 먼저 포탄 터지는 전장으로 뛰어들었고 가장 먼저 목숨을 잃었다.
일상을 살 때는 평민들의 피땀 위에서 편한 삶을 누려왔지만, 위급한 상황에선 태도가 달랐다고 한다. 비교적 좋았던 영양상태 탓에 사망한 귀족들은 대부분 큰 키였다고. 영국에서 키 큰 귀족이 사라진 이유는 그들이 죽음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선장을 포함해 침몰한 제주행 여객선에 탔던 승무원들에게 위와 같은 영국 귀족식의 '목숨을 건 희생'을 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배에 관해 잘 아는' 그들이, 차가운 바다에 빠질 것이 너무나 자명한 '배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수백 명 아이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나 먼저 탈출'을 했다는 건 최소한 '어른답지도' 못했다. 요 며칠, 나 역시 이 땅의 '어른'이란 사실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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