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루느티나무
김종신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학사루 느티나무'다. 어른 7~8명이 감싸 안고도 남을 정도로 큰 이 나무는 조선시대 전기의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1431~1492)이 함양현감으로 부임한 뒤에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성종 때 노모를 모시겠다고 간청해 함양현감이 된 김종직 선생. 선생은 왜 이 나무를 여기에 심었던 것일까? 함양 현감으로 재직 중 김종직은 마흔이 넘어 얻은 다섯 살 아들을 홍역으로 가슴 속에 묻어야 했다. 정3품 통훈대부로 승진, 한양으로 떠나면서 먼저 하늘로 보낸 아들을 기리기 위해 심은 나무다. 부모 가슴에 묻힌 아들의 이름은 목아(木兒)였다. 아마도 천 년은 거뜬히 살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 들여 심으며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훌쩍 가버린 '나무 아이', 아들의 짧디짧은 삶을 달랬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긴 나무다. 그런 까닭에 우리 겨레의 비극도, 백성들의 애달픈 사연도 묵묵히 지켜보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우리가 떠올리는 시골 풍경 중 하나는 널찍한 들판 한가운데는 물론이고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뙤약볕에서 여름 한 철의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그늘을 드리웠고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아낌없이 주던 나무. 느티나무는 임금의 시신을 감싼 천마총의 관(棺)과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법보전 같은 사찰 건물을 비롯해 백성들의 뒤주, 장롱, 궤짝 등에서도 사용된 고마운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