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가 추진하고 있는 학칙개정 내용
중대신문
비민주적 학칙 근거로 비판적 학생들을 내쫓는 학교일련의 사태들이 벌어진 원인을 단순히 두산 재단 때문이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중앙대가 두드러지게 이런 양상을 보이는 것뿐이지 다른 대학들도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대학의 비민주적 학풍의 중심에 '학칙'과 관련된 문제가 놓여 있다. 학칙은 학교의 운영원리를 담은 일종의 '법'이다. 그런데 많은 대학들이 이해되지 않는 조항들로 들어차 있는 학칙을 앞세워 비민주적인 학풍을 조성해가고 있다. 최근 학칙 개정 운동을 진행하는 '대학, 안녕들하십니까?'에서 발표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지난해 고려대에서는 개최가 예정되어 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시국강연회가 느닷없이 학교로부터 강제 취소당한 일이 있었다. 학교가 장소 대관을 갑자기 철회한 것이다. 사유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사'이기 때문이었다. 강연회는 결국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막는 일은 다른 학교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국민대에서는 학교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써온 학내 언론사 기자들을 학칙을 앞세워 학보사에서 쫓아낸 적이 있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쫓겨난 기자들은 학교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기 위해 <국민저널>이란 새로운 학보를 만들었다. 성균관대, 성신여대, 가톨릭대 등지에서도 대학언론의 자치권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학교 당국에서 허가해주지 않은 대자보나 유인물이 '학칙'에 의거해 찢겨져 나가는 학교도 많다. 한술 더 떠서 아예 학내에서 학교를 상대로 하는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학교들도 있다. 정당 가입이나 사회단체 가입과 같은 개인의 정치적 선택에까지 간섭하며 이를 금지하는 학교들도 존재했다. 헌법에 의거해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일부 학교 학칙에서는 깨끗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칙들이 부당하다고 여겨서 반발하는 학생들을 위해 징계에 대한 학칙도 마련돼 있다. 여러 학교의 학칙에서 '품행이 방정하지 않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등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모호한 문구들을 학생의 학업을 중지시키는 퇴학·정학 등 징계의 근거로 쓰고 있다. 중앙대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모호성은 학교에 비판적인 학생들을 교정에서 내쫓는 일에 악용되고 있다.
'순종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란...20대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지금, 대학 사회가 굴러가는 모습이 곧 한국 사회의 미래상이 될 것이다. 10년, 20년이 지나고 지금의 20대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주류세력이 되었을 때, 그들이 대학을 다니며 듣고, 보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곧 우리 사회의 현실이 돼 있을 것이다. 의심과 토론, 합의의 과정이 거세된 캠퍼스에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겪으며 '순종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교훈을 배운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학들이 비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들의 참여와 비판을 차단하려는 생각의 바닥에는 대학을 교육기관이 아닌 일종의 돈벌이 수단이나 기업과 같은 사유물로 인식하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기업이 재단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한 몇몇 대학에서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관련된 사건들이 타 대학에 비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유재산인 대학을 소유자인 재단과 대학본부가 마음대로 운영하겠다는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데 그곳에 민주주의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처럼 비민주적인 학칙과 기업식 운영 마인드로 제멋대로 고등교육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여러 대학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가령 학과 통폐합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과 같이 대학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 속에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학이 교육환경의 개선이 아닌 자산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무분별한 투자를 벌인다든가, 재단이 대학교육을 담보로 비리 행위를 저지른다든가 하는 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학문적 자율성은 보장하되, 대학 운영은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교육 공공성이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여러 대학에서 학과 통폐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막무가내 식으로 이를 밀어붙인다. 토론과 소통이 부재한 공간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비민주적 학칙에 의해 불이익을 받게 될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비민주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민주적인 한국사회의 미래는 없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시민의 힘으로 지키는 군인의 인권, 군사 독재의 잔재를 걷어 낸 시민의 군대를 상상합니다.
공유하기
퇴학도 정학도 총장님 뜻대로?... 병들어가는 대학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