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시민운동가 한창진 예비후보는 너무 강하다는 이미지에 대해 "큰일이 있을 때마다 지역출신으로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으면서 생겨난 이미지 덧씌우기였다, 오히려 이렇게 평가 받는 것이 자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명남
"부두 노동자이신 아버지와 연탄 배달하는 어머니를 둔 저로서는 가난의 고통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습니다."'도단이'에 관한 사연을 묻자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시민운동 경력만 40년인 한창진 여수시장 예비후보. 얼마 전 '여수갈매기 한창진' 블로그에 그가 쓴 '
도단이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잔잔한 감동을 줬다. '도단이'는 1950년대 여수 자산공원에서 오동도 쪽에 따닥따닥 붙어있던 가난한 집들을 일컫는다.
지난 9일 여수시 학동의 한 커피숍에서 한 후보를 만났다. 여수시민 160여 명이 '시민의 힘으로 지역을 바꾸자'며 구성한 '좋은후보시민추진위원회'는 지난 3월 31일 여수시장 후보로 한창진(59) 후보를 선출했다.
그의 삶 곳곳엔 아직도 야성이 남아 있다. 그는 전교조 해직교사, 교육의원 출마, 시민운동가, 여수상공회의소 자문위원회 위원장, 지역 언론사 대표 등을 거쳤다. 가시밭길이었다.
한창진 후보는 '여수시청 공무원 80억 원 횡령 사건'에 대해 "그렇게 만든 공직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년 동안 촛불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책임자 사과와 변상을 요구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책임 위치에 있는 시장이 변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시민사회진영)가 시장을 당선 시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면서 "어쩌면 80억 원 횡령 사건 때문에 좋은 후보 한창진이 있게 된 것"이라고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아래는 한창진 예비후보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좋은 후보는 사회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좋은 시민후보 경선에서 당선했다. 좋은 후보란 어떤 후보를 뜻하는가?"좋은 후보는 돈에 의지하지 않고, 화려한 경력에 의지하지 않고, 조직에 의지하지 않는 오직 '사회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후보를 말한다."
- 선거비용을 걱정하는 시민이 많다. "정부가 선거공영제를 실시하면서 정치자금을 제한했다. 시장후보는 1억9400만 원 범위다. 선거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결국 금권선거를 한다는 얘기다. 많은 후보가 자원봉사대신 선거운동원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준비한다. 예비후보기간 3개월은 정치 신인을 위한 제도인데, 그 기간에 여러 후보가 많은 비용이 드는 출판기념회로 사람을 동원한다. 세를 과시하다 보니 음성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우린 현장을 찾아가는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비용이 안 든다."
- 선거비용을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범적으로 선거비용을 모금했다. 선거펀드를 개설하겠다. 펀드는 10% 이상 15%까지 득표 시 이자율 2~3%로 계산해 되돌려 주는 제도다. 단 득표율이 부족하면 한푼도 못 찾는다. 본 선거기간 동안 후원회를 통해 500만 원 이내의 건강한 후원금을 받아 선거비용으로 쓰겠다."
- 전교조 해직교사, 교육의원 후보, 시민운동가, 지역 언론사 대표 등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일을 하면서 기준과 판단의 근거를 '사회 정의'에 둔다. 인생을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교사가 된 뒤 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를 만든 분들이 해직되는 걸 봤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국적으로 교사·교육민주화운동 차원에서 여수·여천 교사협의회가 만들어질 때 포스터만 보고 내 발로 찾아갔다. 당시 여수산단이 출연한 사립학교에 근무했는데, 이 땅 '국민의 교사'가 되고 싶어서 참여했고, 해직까지 됐다."
- 지난 교육의원 선거에서는 몇 백 표 차로 떨어졌다. "선거에서 '기존의 벽'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교육의원이라는 것이 생소해 자녀가 없는 시민들은 관심이 없어서 '묻지마식 투표'가 이뤄졌다. 섬 지역에서 조직적인 개입이 이루어진 결과다."
"40년 시민운동... 자랑스럽다"- 많은 시민이 '여수의 인물'이라고 한 후보를 치켜세운다. 하지만 '비타협적이다, 진보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많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나는 '아니'라고 소신껏 말했다. 내 한 말에 대해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실천하는 책임있는 활동이 '고집'으로 비춰졌다. 40년 시민운동 경력이 결국 '강한' 이미지로 보였을 것이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지역 출신임에도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렇게(비타협적) 평가 받는 것이 자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무조건 반대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 '도단이를 아시나요?' 글이 화제다. 도단이에 대한 사연을 말해 달라."1950년대 태어난 전후 세대는 누구나 가난의 고통을 겪었다. 부두 노동자이신 아버지와 연탄 배달하는 어머니를 둔 나로서는, 그때 겪은 가난의 고통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도단이라는 조그만 집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던 그 동네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다. 밭 한 떼기 없던 제가 고구마를 캐러 다녔던 '도단이 밭' 사진을 보고서, 어려웠던 유년시절의 과거를 떠올린 걸 글로 썼다."
- '여수갈매기'로 통하는데, 이런 애칭을 쓴 사연이 있나?"일단은 여수에서 태어났고 바다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 소설에 나오는 조나단이라는 갈매기가 바로 저와 같았다. 높이 날기 위해서 남모르게 나는 연습을 한 조나단처럼 저도 늘 공부하고 남과 다른 생활을 통해 많은 잠재적 능력을 갖췄다. 여수의 아이들이 조나단 갈매기처럼 꿈을 갖고 높이 날아서 멀리 내다보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여수 갈매기'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