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벤 전 영국 노동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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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벤(1925~2014)은 1950년 25세 나이에 부유한 귀족이었던 부친의 상원의원 세습 작위를 버리고 선거로 하원에 진출하여 노동당 의원에 당선된다. 그 후 1950년부터 2001년, 정계에서 은퇴하기까지 무려 47년간 노동당 의원을 지냈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그는 노동당정부에서 체신부장관과 과학기술부장관을 지냈고 1974년부터 1979년까지는 산업부장관과 에너지부 장관을 맡았다.
마가렛 대처(1925~2013)는 부유한 토니 벤 가문과는 다르게 소박한 구멍가게 주인집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토니 벤이 노동당 하원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된 같은 해인 1950년 보수당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낙심한 그녀는 그 이듬해인 1951년 10세 연상 사업가 데니스 대처와 결혼하면서 법률공부를 시작하고 3년 만인 1954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정치에 재도전 한 대처는 토니 벤보다 9년 늦은 1959년, 마침내 보수당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1970년 선거에 노동당이 패하고 보수당이 정권을 잡자 대처는 교육과학부 장관직을 맡는다. 이때 대처는 교육부장관으로서 학교 우유 무상급식폐지를 결정하면서 여론에서 "마가렛 대처, 우유 강탈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는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반대 여론에 개의치 않고 학교의 우유 무상급식을 철폐시킨다. 아마 이때부터 '철의 여인' 대처리즘의 싹이 보였다고 할까.
한편 토니 벤은 1966년 체신부장관 시절 엘리자베스여왕의 초상을 우표에서 폐지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벤의 그런 결정은 여왕을 지지하는 강력한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 그 계획을 곧 철회한다. 대처와는 달리 벤은 여론에 귀를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선거에 노동당이 승리하자 벤은 다시 내각으로 돌아와 산업부장관을 맡는다. 당시 노동당 정부는 대불황에 직면하며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재정위기를 맞았을 때처럼, IMF의 요구를 수용하여 정리해고에 들어가고 사회복지를 줄이는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때 산업부장관이었던 토니 벤은 자기가 속한 노동당정부에 항의하고 수상과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 논쟁 덕에 산업부장관에서 에너지부장관으로 좌천된다.
대처리즘, 기업들은 좋아졌지만 실업자는 더욱 증가 한편 1979년, 보수당이 집권하고 1974년부터 5년째 당대표를 한 마가렛 대처가 수상으로 취임한다. 이때부터 대처는 그동안 노동당정부가 고수해 왔던 국유화를 민영화(사유화)로 바꾸고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대처리즘'을 도입한다. 대처리즘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 복지삭감과 세금인하 ▲ 국영기업 민영화 ▲ 노동조합 활동규제 ▲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보장 ▲ 정부가 기업에 최소한만 간섭하는 '작은 정부'
이런 대처리즘 때문에 기업들의 경제활동은 좋아졌지만 실업자는 더욱 증가했다. 그러자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대처리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대처리즘이 횡행하던 시절 토니 벤은 '사회민주주의'를 더욱 추진하면서 대처리즘에 맞섰다. '벤 좌파'라고 불린 노동당 급진좌파가 형성되면서 벤은 그 구심점에 있었다. 벤은 1982년 대처 수상이 포클랜드전쟁을 일으키자 반전운동을 주도하면서 영국제국주의 전쟁의 반대자로 두각을 나타낸다.
1984~1985년 광부들이 대처리즘에 대항해 대파업을 일으키는데 이때 벤은 앞장서서 광부들의 파업을 지원한다. 그러나 광부들의 파업이 강력한 공권력을 앞세운 대처 정권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자 노동당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그러나 벤은 소속당의 우회전에 동참하지 않고 파업에 관여한 모든 광부들을 사면해주자는 '광부사면법'을 하원에 발의한다.
198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에 패배하고 그 다음해인 1988년 벤은 노동당 당수에 도전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벤은 1990년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1999년에는 코소보 전쟁에 반대한 극소수 하원의원 가운데 한 명이 됐다.
1991년 노동당이 야당으로 있을 때, 벤은 영국의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가자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지만 부결된다. 1993년 11월 29일자 일기에서 벤은 "노동당은 죽었다, 노동당은 그저 보수당을 비판할 뿐 정책이 없다"라며 "노동당 정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제도권 정치에 환멸과 한계를 절감한 벤은 2001년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정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자 의회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2003년 그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반전운동의 선두에 선다. 그는 정치가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는 신념을 평생 확신했고, 누구든 어떤 환경의 사람이건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천했다.
보수당 반발에 쫓겨난 독선적인 대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