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균 소득 40만 원도 안 되는 채무자들에게 한 달에 5~10만 원씩 내라고 하는 곳의 이름이 국민행복기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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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여만 원인 원금과 15년여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불어난 이자 탓에 빚을 갚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A씨는 원금의 절반과 이자를 면제해주고 나머지 원금의 절반을 10년에 걸쳐 나눠 갚으면 된다는 소리에 희망을 품었다. 비록 일용직으로 한 달에 100~120만 원을 버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아껴서 생활하면 그동안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지긋지긋한 빚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A씨는 국민행복기금이 출범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지난해 4월 23일 가까운 농협을 찾아 국민행복기금을 신청하고 지원 승인이 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국민행복기금으로부터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그의 신청이 승인됐고 약정서에 사인을 해 우편으로 되돌려 보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뭔가 좀 이상했다. A씨는 모든 채무가 포함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의 채무 중 N보증기금에서 대출받은 5000만 원과 S은행에서 대출받은 1500만 원이 누락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론 N은행과 S보증보험에 진 채무 350여만 원만 국민행복기금 조정 대상에 포함된 것이었다.
N보증기금 채무와 S은행의 채무가 빠진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은 A씨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다시 실망에 빠졌고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을 신청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우편물도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국민행복기금에서 같은 내용으로 우편물이 왔지만, 그는 이번에도 우편물을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3월 말, 난데없이 법원등기를 받았다. 국민행복기금에서 A씨를 상대로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한 것이다. A씨는 너무나 놀랐다.
"국민행복기금은 채무자를 위한 곳 아니었나? 내가 국민행복기금 승인 약정서에 사인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내 채권자가 국민행복기금이 되어있고 지급명령을 신청 할 수가 있지?" 게다가 지난 4일에서야 N은행과 S보증보험의 채무가 국민행복기금으로 양도되었다는 양도 통지서를 받았다.
출범 1주년, 25만여 명 채무조정 지원했다지만...지난달 2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국민행복기금 출범 1주년 성과 및 행사 개최 계획'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4년 3월 현재까지 25만여 명의 채무조정을 지원했고 당초 목표 대비 3.8배를 초과달성했다'고 한다. 총 채무원금 1.8조 원 중 0.9조 원을 감면(51.8%)하였고, 1인당 평균 573만 원이 감면되었다고 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짧은 기간에 놀랄 만한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행복기금 조정 대상자의 연평균 소득은 456만 원이고 평균 채무는 1108만 원, 평균 연체기간도 6년 2개월이나 된다. 또 60대 이상 고령층 대상자가 전체의 10%로 이전의 한마음, 희망모아 등 다른 채무조정 프로그램들보다 두 배 이상 높다.
국민행복기금은 이들의 채권을 채권사들에게서 채무원금의 3%~5%에 사온 뒤 채무자로부터 원금의 50%를 받아낸다. 예를 들어 B라는 사람이 C은행에 1000만 원의 채무가 있다면 국민행복기금은 채권 금액의 3~5%인 30~50만 원에 채권을 사와, 원금의 50%를 감면한 500만 원을 채무자로부터 10년간 받아내는 것이다. 일부에선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지만, 어떤 부분이 더 도덕적 해이인지 곱씹어 봐야할 것 같다.
월평균 소득 40만 원도 안 되는 채무자들에게 한 달에 5~10만 원씩 내라고 하는 곳의 이름이 국민행복기금이라니... 결국 국민행복기금을 신청한 이들은 10년 동안 채무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국민행복기금을 신청한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는 것이 오히려 짐인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빚을 갚으라니...
또 앞서 언급한 A씨처럼 국민행복기금 조정대상자가 돼도 국민행복기금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외대상 채무가 너무 많아, 결국 개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다.
결국 법원에 '개인파산신청'을 하기로 한 A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