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1일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청구를 위한 거리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1941년 이후 좌익진영이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하면서 임시정부는 좌우통일전선체로 도약했다. 이 무렵 임시정부는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인 태항산 지구에서 활약하던 조선독립동맹과도 연대를 추진했다. 이런 속에서 임시정부는 건국구상을 구체화해 1941년 11월 건국강령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건국강령은 헌법은 아니었으나 새 국가건설의 원칙을 규정한 것으로, 그 이론적 기초는 조소앙의 삼균주의였다.
건국강령에 묘사된 삼균주의는 정치·경제·교육의 권리를 균등하게 하여 국내적으로는 특권계급의 소멸을 지향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과 민족 간의 불평등을 제거해 민족자결권이 보장될 수 있게 하는 방략이었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보통선거, 국유제도, 공비(公費, 무상)교육을 제시했다. 건국강령 제1장에선 삼균제도 발양을 피력하였고, 제2장에는 나라를 되찾는(復國) 방략을 담았다. 제3장에는 단계적 건국 구상을 담았다. 건국의 제2기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었다.
삼균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실시하여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민주적 시설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며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가 완성되고 전국 학령아동의 전부와 고급교육의 면비(免費) 수학이 완성되고 보통선거제도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되어 전국 각리·동·촌과 면·읍과 군·도(島)·부(府)·도(道)의 자치조직과 행정조직과 민중단체와 민중조직이 완비되어 삼균제도와 배합 실시되고 경향 각층의 극빈(極貧)계급의 물질 및 정신상 생활정도와 문화수준이 제고 보장되는 과정을 건국 제2기라 함. 이처럼 새 나라의 최대 과제는 민족구성원의 '실제상 균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건국강령은 헌법상 경제체계의 기본원칙으로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함과 민족전체의 발전 및 국가를 건립 보위함에 연환(連環, 순환)관계"를 가지게 함을 천명했고,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제외한 대생산기관과 토지 및 교통·전기·수도 등의 국가 인프라, 은행의 국유화 방침을 채택했다.
아울러 일본인 및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해 국유로 삼고, 그것을 일체 무산자의 이익을 위한 국영 혹은 공영의 집단 생산기관에 충당하며, 두레농장·국영공장·생산소비와 무역의 합작기구를 조직해 농공대중(농민·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또 노동자의 불합리한 노동을 금지하고, 노동자·농민에 대한 무상의료 시행을 명기했다.
이처럼 독립투사들이 구상한 국가·사회는 '민주주의'와 '혼합경제'를 조합한 사회민주주의의 형태였다. 땀 흘리는 노동자·농민의 삶이 존중받고, 대기업·특권계급을 소멸시켜 누구나 고르게 살자는 것이었다. 이는 식민지 자본주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였다. 해방 후 몇몇 우파 정치인들이 이를 '민족사회주의'라 부르며 동조했던 것도 이 점 때문이었다. 일본인과 몇몇 친일파가 자본을 독점한 상황의 타파야말로 진정한 민족해방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본정신이 자유, 평등, 진보에 있다는 임시헌장 전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균평(均平)주의를 건국강령에선 우리의 전통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예컨대 토지국유제를 우리나라의 전통적 토지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이론에 따라 국유화를 주장했다면, 임시정부 인사들은 한국사에 내재된 평등 지향의 흐름에서 그 근거를 찾았던 셈이다.
정치적 자유와 사회경제적 평등의 조화를 위하여이러한 임시정부의 헌법과 건국구상은 뒷날 제헌헌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최근 연구에서 지적되듯 제헌헌법은 구성과 체계, 내용 면에서 임시헌장 및 건국강령을 빼닮았다. 제헌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건립의 계기를 기미 삼일운동에서 찾은 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는 점에 헌법의 목표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건국강령의 목표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제헌헌법 제1조 역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제2조에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못 박았다. 또 제5조에선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공공복리에 있음을 환기시켰다. 국가의 의무는 그것의 보장과 조정이었다.
이와 함께 제헌헌법의 최대 특징은 경제면에서 두드러진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 경제질서의 대원칙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제84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