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월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순박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융통성이 전혀 없을 정도로 우직한 미생은 어느 날 다리 밑에서 한 여인을 만나기로 약속해 시간에 맞춰 다리 밑으로 가 여인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약속 시간에 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때마침 비가 와 다리 밑에 물이 불기 시작했는데,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장소를 떠나지 않아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사기>의 소진열전(蘇秦列傳), 장자(莊子)의 도척편(盜跖篇),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편(說林訓篇)에 등장한다. 사기의 소진열전에서만 미생(尾生)의 행동을 신의로 해석하고 그 이외는 모두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예로 등장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일반적으로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고 고지식한 믿음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인다. 그 외 <십팔사략>에 나오는 송양지인(宋襄之仁)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또는 불필요한 인정이나 동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심한 타격을 받는 것"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다시 등장한 '미생'춘추시대의 미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살아 돌아와 정치인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금부터 4년 전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정몽준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던 박근혜 의원에 대해 "미생이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하여 박근혜 의원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박 의원은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고 밝혔다.
이번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대표가 미생을 데려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 안 대표는 지난 3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박 대통령께서는 미생의 죽음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4년 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면서 미생을 들먹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단체 무공천'에 대한 견해를 밝히라고 압박한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로 돌아가 보자. 여당과 야당은 물론 유력 대선주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기초단체 무공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중앙정치의 간섭을 막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킨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또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기초단체 무공천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