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마트 김경식 씨 "어이, 사장! 이 술 줄 거여? 돈 받는다고?" 하면서 병째 깨버리고 가는 고객도 있는 주공 4차 행운마트. 그는 주민들이 왜 그러는지, 그 처지부터 헤아려 본다.
매거진군산 진정석
2002년, 김경식씨는 군산시 주공4차 아파트 상가 지하에 행운마트를 열었다. 마트 앞에는 무료급식을 하는 나운 복지관이 있었다. 그는 복지관을 찾아가서 "뭐 도와드릴 것 없나요? 제가 쌀이라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복지관 측에서는 후원받는 쌀이 있으니까 현금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다달이 일정 금액을 자동이체했다.
어느 날, 나운 복지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군산시에서 결식아동들에게 물품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는데, 군산시내 모든 마트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복지관 사람들은 "사장님이 그런 것을 하셔야지요"라고 적극 권장했다. 운 좋게도 행운마트는 납품하는 마트로 선정되었다.
일이 늘었다. 마트 직원들한테 고생한다고 월급을 더 주고도, 백만 원쯤 남았다. 그는 군산시청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찾아가서 "이것은 제가 벌 돈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들한테 쓰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 공무원은 사정이 딱한 여러 곳을 알려줬다. 그는 라면, 쌀, 된장, 고추장을 한 차 가득 싣고 가서 나눠줬다.
행운마트는 주공4차 아파트를 끼고 있다. 그 곳은 방 하나에 거실, 7평·9평짜리 아파트 단지다. 병이 들거나 장애가 있거나 가난한 사람들 1999세대가 산다. 어떤 사람은 행운마트에 와서 "내가 두 달 만에 고기를 먹는데 2천 원 값만 주세요"라고도 한다. 처지가 어려워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주공 4차를 흥청망청 하는 디로 알아요. 아침부터 '어이, 사장! 이 술 줄 거여? 돈 받는다고?'하면서 병째 깨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 사람들은 한 달에 20만 원에서 40만 원씩 국가에서 지원이 나와도, 관리비랑 전기세, 병원비 내면, 먹고 살기 힘들어요. 저축할 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를 하겠다는 꿈이 없이 살아요.
그래서 제가 소외계층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됐어요. 요즘은 우리 마트 주변에 대형마트, 체인형 슈퍼가 많이 생겨가지고 경기가 안 좋아요. 그래도 주민들이 '우리 행운마트 잘 돼서 사장님이 부자로 살아야 해. 우리 생각해 주는 디는 여기 밖에 없어. 그런게 여기서 물건을 팔아줘야지' 라고 말씀할 때마다 고맙죠. 더 정이 들죠." 나도 오래 전에 주공 4차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러 다닌 적 있다. 할머니는 젊을 때부터 가난했다. 백내장 수술을 할 돈이 없어서 40대에 눈이 멀었다. 그런데도 집안은 정갈했다. 장애인의 날에 군산시에서 보조금이 나왔는데 그 돈으로 도배를 신청했다.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들 기분이 산뜻하라고. 할머니는 임신한 내 몸을 더듬더듬 만져보시고는 말했다.
"응, 아들이여. 눈은 안 보여도 배 모양을 보면 알지. 다 알아. 봄에 꽃 피던 것도 눈에 선해. 참 이뻤어."행운 마트는 아침 8시에서 밤 12시까지 영업한다. 그는 젊은 직원과 알바들에게 꼭 얘기한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려면 부모 재산이 많든가, 내 머리가 똑똑하든가, 내가 성실해야 한다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공무원도 되고 좋은 직장도 들어갈 수 있다고. 가난한 6남매 중 막내로 자란 그는, 직원들이 잠시 스쳐가듯 일하는 마트에서도 삶을 배우기 바란다.
"직원이든, 조카든, 성실하게 2~3년 일하면 마트를 하나씩 채려줬어요. 독립 사업자로요. 이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까 내가 그 책임을 져야지. 하다 보니까 미수가 10억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납품업자들이 나를 믿고 물건을 깔아줘요. 햐, 너무 고마운 거예요. 마트 생리가 있어가지고 몇 개월 지나면 순환이 되거든요. 제가 언제까지 갚겠다고 하고 약속을 지켰죠."그때, 그는 깨달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신용도 중요하다고. 나무의 나이테가 많을수록 거목이 되듯이, 신용도 그렇게 더디고 굳세게 생긴다는 것을. 돈을 벌기 위해서 장사하지만 좋은 일에도 돈을 더 쓰자고. 그래서 가훈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로 바꿨다. 아이들을 혼내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혼나"라고 한다.
그 전에 김경식씨네 가훈은 '아빠를 따르라'였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셋 다 연년생이다. 1년에 둘을 낳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 중에 낳고 싶어서 낳은 애 하나도 없다. 아빠 엄마 좋아서 낳았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즐겁게 열심히 살아라"고 한다. 지금은 대학생, 고등학생인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독특한 가훈을 창피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