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는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170일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파업을 실시하였다.
유성호
정당한 파업은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고, 불법 파업은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이 뒤따른다. 파업을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이다. 특히 법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민사상 면책조항은 '정당한' 파업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해왔다. 즉 파업의 ① 주체 ② 목적 ③ 절차 ④ 방법이 모두 정당해야 면책이 되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손해배상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기업 홍보 담당의 고백 "왜 거액의 파업손배소 내냐면...")노동계와 노동법 학자들은 대법원이 민사상 면책되는 파업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을 보장하려면 지금보다 더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등장하고 있다. 법을 개정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만으로도 정당한 파업이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몇 가지 판결을 통해 '희망'을 찾아본다.
법원, "MBC 노조 파업은 정당" 판결한 까닭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아래 MBC 노조)의 파업사건이다. MBC 노조는 2012년 1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170일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사수'를 내걸고 파업을 실시하였다. 이에 맞서 사측은 노조와 노조 간부 16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사측은 소장에서 "파업의 목적이 순수한 근로조건 개선과 무관한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확보로서 위법할 뿐만 아니라 그 시기와 절차,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도 위법하다"며 "노조와 간부들이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측이 주장하는 손해액은 무려 195억 원이었다.
가장 큰 쟁점은 목적의 정당성이었다. 다시 말해 MBC 노조가 내건 '공정방송 사수'가 파업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는지였다. 현행 법과 판례로 볼 때 합법파업은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근로조건을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라는 법조항만으로 좁게 해석한다면 MBC 노조의 파업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런데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법(제15민사부 재판장 유승룡 부장)은 파업이 방송의 자유의 보장과 한계라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파업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근로관계에 관한 법률뿐 아니라 방송에 관한 헌법과 법률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공정방송 의무는 객관적 법질서로서의 방송의 자유가 법률에 의하여 구체화된 것으로서 방송사업자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기관 종사자에 부과된 의무이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방송의 공정성 보장이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임금인상 아닌 공정방송도 파업 목적 될 수 있다"재판부는 "쟁의행위의 목적은 근로조건의 결정 또는 그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노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노사 당사자에 관련되는 사항, 즉 원칙적으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는 사항으로 한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반드시 임금 등 근로자의 경제적 지위의 유지, 향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MBC가 국민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사이기 때문에 특수성을 고려하여 단체교섭 사항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방송의 공정성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준수는 의무적 교섭사항이며, 노조의 공정방송 요구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MBC 사측이 ▲ 파업 직전까지 경영진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공정방송 실현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고 ▲ 제작자와 상의 없이 임의로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 정권을 비판하는 방송 제작을 거부하고 ▲ 일방적으로 제작자 보직을 변경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하였고 ▲ 내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고 ▲ 경영자의 가치와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만을 제작, 편성하려 시도하였다고 사측을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행위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악화시킨 것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에 의하여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와 법질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지으면서 이렇게 정리한다.
"MBC 노조가 사측에게 요구한 공정방송 사수는 단순히 기존 단체협약에서 정한 의무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위법상태를 시정하고 새로이 공정방송을 실효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협의하자는 요구이므로, 어디까지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하여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노조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위법이 아니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주된 목적은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MBC 노조의 파업 수단과 방법에서도 ▲ 집회나 농성이 대체로 단기간에 그친 점 ▲ 방송 송출 자체가 중단될 정도의 전면적·배타적 점거는 한 차례도 없었던 점 ▲ 폭력·파괴행위가 일어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정당한 파업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언론사 노조의 특수성을 인정, '공정방송 사수'라는 파업의 목적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011년 대전지법, 철도노조 파업 정당성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