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엘리자베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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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국 국민의 존경과 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공주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방부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군용트럭을 운전하면서 군 구호품을 전달하고 탄약을 관리했다. 운행 후에는 검은 기름이 묻은 손으로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바꾸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하거나 차량을 정비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나치군대가 거의 매일 런던 등 영국의 대도시를 무차별 공습하면서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나갔고 런던은 폐허가 되어갔다. 이에 왕실의 안녕이 곧 국민의 사기와 직결되어 있다고 판단한 윈스턴 처칠 수상은 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부모인 조지 6세 국왕과 왕비에게 안전한 교외나 심지어 캐나다로 피신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국왕과 왕비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런던에 독일 전폭기의 공습이 매일 같이 이어질 때도 이들은 해외로 피신을 가지 않고 국민과 함께 꿋꿋이 런던을 지켰다.
독일 비행기의 무차별 야간공습이 있은 다음 날, 국왕과 왕비는 처칠 수상과 함께 폐허가 된 런던을 둘러보며 국민들을 위로했다. 전쟁의 참상에 지쳐 있던 영국 국민들은 박수와 기쁨으로 열광했고 계속된 히틀러의 무차별 공습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들이 사기는 꺾일 줄 몰랐다.
한국의 사회지도층, 좁게는 박근혜 정부나 그의 고위관료들이, 영국 여왕이 받은 것과 같은 애정과 신뢰를 우리 국민들로부터 받고 싶으면, 국민들로부터 애정과 신뢰를 받을 만한 일을 해야 한다. 최소한 모든 국민의 아들이 가는 군대에 고위 관리들도 자기 아들을 당연히 보내야 한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한 장준하 선생은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일단 참전이 결정되자 그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신의 힘을 이용하고 '빽을 써서' 큰아들 장호권을 참전시켰다. 주위에서 "아니, 참전에 찬성한 여당의원들도 자기 아들을 베트남전에 안 보내는데 참전에 반대한 장 의원님이 왜 아들을 베트남에 보내요?"라고 만류했다. 그때 장준하 선생은 "남의 귀한 아들을 총알받이로 전쟁에 보내고 내 아들만 안 보낼 수가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장전입 위반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에 위장전입자인 강병규씨를 임명했다. 원칙과 신뢰를 내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이 장준하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공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과감하게 희생하는 멋진 정신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러한 우리 기득권층에게 영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보여주었던 애국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위공직자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공익을 위하는 정신이 없으면 민주사회의 지도자로서 너무나 부적절하다고 확신한다. 이런 공직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 곧 "사회적 암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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