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건장산이다(2)

뒤엽쟁이 대장간

등록 2014.03.26 19:24수정 2014.03.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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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거리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뒤엽쟁이 출장'도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만의 전용 대장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뒤엽쟁이'는 마을 뒤 북쪽 에 있는 건장산 줄기의 후미진 골짜기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동매산 끝자락이란 뜻으로 '똥메꼬챙이'라고 불리우는 야산을 지나서 지금은 없어진 한증막을 겸업하는 성석이 형네 절 집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열 살 전후의 소년들로서는 꽤 먼 거리였다.

더구나 그 길은 한적한 산길이라 어쩌다 보이는 절손님이나, 절 집 위에 있는 약수터인 물탕에 가는 사람 외에는 왕래하는 이가 별로 없다. 그 물탕은 산속에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마시기도 하지만 여름철에는 주로 목욕을 하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물탕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수량도 넉넉하고 무엇보다도 오래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차갑다. 그래서 그곳에서 목욕을 하면 땀띠가 잘 가라앉는다고 하여 한 여름에는 외지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곤 했다.

물탕과 절 집으로 올라가는 조그만 사거리를 지나서 좁은 산길을 좀 더 가면 야생 밤나무 숲이 나온다. 바로 그 밤나무 숲 너머 건장산과 고척리산을 잇는 산허리의 잘룩한 지형을 깎아낸 곳으로 내륙도시와 항구도시를 연결하는 지선 철도가 지나간다. 바로 그 후미진 철길이 우리들의 목적지인 '뒤엽쟁이 골짝'이다. 그 철길 인근에 자리 잡은 10여 호 되는 작은 마을의 이름이 뒤엽쟁이다. 임피역과 대야역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뒤엽쟁이 골짝'은 마을 소년들의 필수품인 주머니칼을 만드는 무기제조창이었다. 그곳은 건장산과 고척리산의 두 산 줄기에 막혀 외부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철로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지형이라서 기관사조차도 가까이다가오기 전에는 전방 관찰이 용이하지 않은 천혜의 작업장이었다. 치밀한 준비와 오랜 행군 끝에 이윽고 철길에 도착한 소년들은 매우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 작업은 매우 정교하고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미리 준비해 간 기역 자로 구부린 대못을 기차가 오지 않는 틈을 노려 재빨리 레일의 연결 부위에 끼우고 철사나 노끈으로 침목에 단단히 고정시켜야 한다. 느슨하게 묶어 놓았다가 못이 열차의 진동으로 흔들려 미리 떨어져 버리면 낭패다. 못이 떨어지거나 움직이지 않고 반듯하게 놓여 있다가 열차 바퀴 한 두 개 정도가 지나갈때까지 버텨주면 된다.


그 대못은 육중한 기차 바퀴에 눌려 납작하게 되어 주머니칼의 재료가 된다. 그렇게 눌려진 쇠토막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구부렸던 곳이 부러지지 않게 망치로 살살 두드려 반듯하게 편 후 숫돌에 날을 잘 갈아야한다. 마지막으로 미리 만들어 둔 나무 자루에 박아 넣으면 훌륭한 주머니칼이 되었다. 솜씨가 있는 아이는 칼자루에 만화에서 본 것처럼 용 그림이나 각종 문양을 새겨 장식하기도 했다.

대못 설치 작업을 끝낸 아이들은 일제히 철길에서 20여미터 떨어진 둔덕 너머로 물러갔다. 소년들은 그곳에 엎드려 열차가 나타나기까지 대기한다. 흡사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군용열차를 폭파하려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처럼 잔뜩 긴장한 채 눈을 치켜뜨고 숨죽이며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바로 내 눈 앞에서 길다랗고 시커먼 화물 열차가 철크덕 철크덕 지축을 울리며 지나간다. 열차가 일으킨 세찬 바람에 주변 잡목이 흔들리고 마른 억새풀이 사정없이 울부짖으며 얼굴을 할퀸다. 그래도 꼼짝하지 않고 기차가 통과하는 동안 눈이 뚫어져라 지켜보며 못의 향방을 추적해야 한다. 이때가 뒤엽쟁이 출장의 하이라이트다. 바로 이 순간에 그 동안 준비한 일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계속)
#건장산 #뒤엽쟁이 #주머니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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