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박물관 전경
최병렬
김중업박물관에는 김중업이 설계한 사무동, 생산동, 경비실, 창고, 보일러실, 굴뚝 등 6동과 함께 여러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유유 부지내에서 통일신라 중초사, 고려 안양사 절터가 발굴되면서 김중업 설계 건축물과 전시공간 1곳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토록 했다. 김중업 건축물들이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1950년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건물이 건축되었다는 것은 유유 창업자인 고 유특한 사장의 예술적 감각과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김중업이 설계한 산업건축물의 내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으로 새롭게 변신했지만 건물의 외형은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한 설계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김중업관(593.72㎡ /전시, 영상, 아카이브)으로 변신한 과거 사무동은 유유를 상징하는 'Y'자 형상의 포치(porch) 기둥을 세워 조형미를 돋보이게 한다.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김중업이 1956년 설계한 명보극장을 비롯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본관, 제주대학교 본관, 프랑스대사관 등의 도면 및 건축물 모형 등 100여 점의 작품이 상설 전시돼 한국 근현대건축계 큰 업적을 남긴 그의 작품세계와 그가 남긴 유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문화누리관(2,394.16㎡ /전시, 교육, 체험, 편의시설 및 사무실과 레스토랑, 미니카페, 뮤지엄숍)으로 리모델된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된 코너가 삼성천의 시야를 확보하고자 하는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건물이다. 대문장식, 철창 등이 유유를 상징하는 쌍Y자를 모티브로 하고, 건물 냉난방 연통의 구멍을 유두(乳頭) 형태의 조형물로 가려 놓는 등 예술적 감각이 곳곳에 간직돼 공장 건물로선 실로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2층 외벽 모퉁이에는 조각가 박종배(제14회 국전 대통령상)의 작품 '파이오니아(pioneer)'와 '모자상(母子像)'이 시선을 사로잡는 등 그 외관부터가 톡특해 과거 안양유원지 시절에는 술에 취한 행락객들이 이곳이 호텔인줄 잘못알고 투숙을 요구하며 경비실에서 걸핏하면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던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창고는 빨간 벽돌의 외형과 천장에 안전사고 표지판이 그대로 간직한채 내부는 50센티에 달하는 방음시설을 갖춘 어울마당(273.72㎡ /공연, 교육, 강연, 이벤트 행사장)으로 변신했으며, 경비실은 문화지킴소(28.83㎡ /안내, 홍보 등), 보일러실은 전망대(43.3㎡ /박물관 조망)로 새롭게 태어났다.
"천년 전 안양사 절터 흔적 다시 지하에 묻혀 안타깝다"
▲산업건축물에서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김중업박물관내 건물
최병렬
김중업박물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양시가 공장 부지를 매입한 이후 복합문화공간 활용에 따른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실시한 중초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곳이 안양시의 지명 유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안양사(安養寺) 절터임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유물로 유일하게 명문이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4호)가 자리하고 있어 그동안 통일신라시대 중초사지 터로만 알려졌으나 2009년 부지내 사굴과정에서 900년경 태조 왕건이 창건한 안양사의 흔적인 安養寺銘文瓦(안양사명문와편)이 출토되고, 역사속 기록으로만 있던 칠층전탑의 흔적까지 발굴됨으로 안양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안타까운 점은 발굴된 거대한 절터의 현장이 그대로 다시 흙으로 덮였다는 사실이다. 복합문화공간 활용 논의 과정에서 역사 교육의 일환으로 칠층전탑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덮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보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더욱이 어린이와 청소년 및 시민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전혀 고려되지 않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김중업박물관 부지(공장 터)에서 발굴한 안양사 명문와편과 함께 통일신라-고려의 치미와 막새 등 기와류와 전돌류, 도자 및 도기편과 용도 미상의 기와, 전돌, 귀면와, 철재 동물 장식 등이 출토 유물들은 김중업 건축물은 아니지만 문화재청이 철거 지침에서 제외시킨 안양사지관(1,262.62㎡ /전시, 영상)을 통해 전시되고 있다.
김중업박물관은 향후 박물관 상설 및 특별전시 외에도 연계교육, 건축 아카데미, 어린이 체험전, 역사학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와 연계시켜 수도권의 대표적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노재천 안양문화재단 대표이사는 "김중업박물관은 안양 지명의 역사적 유래와 한국 건축계 거장의 혼이 담겨있는 역사와 문화를 품은 공간으로 장소적 특색을 살린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문화적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중업박물관은 3월 28일 오후 3시 '퍼블릭 스토리'를 주제로 하는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개막식과 함께 문을 연다. 박물관은 6월 8일까지 APAP 참여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메인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인근에 있는 안양파빌리온에서는 APAP아카이브 등 다변화된 공공예술의 경험을 제공한다.
개관 준비를 진두지휘한 김영식 초대 박물관장 만나다 |
- 김중업박물관 개관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중업 박물관은 안양지역의 역사적 문화 유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다. 중초사, 안양사 절터의 출토 유물뿐 아니라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유산 등 다양한 콘텐츠가 담겨 있다. 또 과거 제약회사 공장이 재생을 통해 문화유산으로 재탄생한 점도 청소년의 교육뿐 아니라 건축을 전문으로 이들, 문화예술 측면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안양시 공무원 신분인데 파견 나와 초대 김중업박물관장으로서 개관을 진두지휘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안양에서 열렸던 세계인라인경기대회 기획 운영 등 적지않은 대형 행사들을 경험했다. 새로운 일에 심적 부담도 있었으나 그 같은 경험이 큰 보탬이 되었다. 또한 학예사 및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의하는 등 본연의 일에 합심했기에 잘 마무리되는 것 같다."
- 김중업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콘텐츠가 다양해 건축가 이름을 딴 박물관이라 하기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시가 천년문화관으로 명명했다가 행정 미스로 다시 김중업박물관으로 다시 바꾸어 개관하며 명칭에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건축가 이름을 딴 '김중업박물관'이라 하니 다양한 콘텐츠들이 축소되고 묻히고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 박물관에는 기념관 성격의 김중업관, 출토유물 전시와 향후 안양역사와 문화를 담을 필요성이 있는 안양사지관, 복합예술공간인 커뮤니티관 등으로 다양하다. 향후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복합적으로 아우룰수 있는 새로운 명칭으로 변경이 필요하한 것으로 본다."
- 공연장인 안양 평촌아트홀에 안양역사관이 있는 등 김중업박물관 개관에도 불구하고 안양의 역사 전시 공간이 이곳저곳에 산재돼 있다. 당초 유유 건축물 활용방안 논의과정에서 안양역사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는데 안양사지관으로 축소됐다. 어느 것이 바람직한가? "당연히 안양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안양역사관도 박물관으로 등재되어 있고, 수장고가 평촌아트홀 지하에 있는 등 추진과정에서 문제로 제기돼 논의를 했으나 향후 평촌아트홀은 전문공연장으로 성격을 분명히 하고, 안양의 역사와 문화는 김중업박물관을 통해 전시됨으로 한곳에서 조명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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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산업건축물 김중업박물관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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