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부산지하철노조 등은 1월 28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아 통상임금 지도지침의 폐기를 촉구하고 임금체계 개악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민규
노동부의 매뉴얼이나 행정지도는 현장 사용자들에게는 절대적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에서 2월부터 두 달 동안 거리상담을 진행한 바에 의하면, 예년의 경우 1월이면 완료되던 개별 근로계약 갱신이 2월, 3월로 늦어지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부는 2월 발행한 통상임금 지침서를 통해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통상임금 범위는 기존의 범위 내에서 지급해도 무관하다"며, 임금체불 줄소송에 대한 임시 면책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매뉴얼을 통해 임금을 새로이 설계하여 통상임금 논란을 단번에 정리하고 임금부담을 경감하는 방법을 안내해줌으로써, 임금 인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미 현장에서는 임금체계를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근로계약이 체결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의 현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개별 근로자들의 동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취업규칙이 변경될 것이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은 지난 2월 국회 상임위를 통해 "강제적으로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이 변경된 사례에 대해 노동부가 올바로 행정지도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제적'으로 변경된 경우는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그것으로 노동부는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노동부의 역할을 포기해 버렸다.
노동부는 어떠한 방식의 조사를 통해 '강제성'을 확인했을까. "근로자들이 동의하고 날인한 서류"를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고 한다. 강제성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것, 또는 강제적이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 결과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지, 최종 서류상의 날인 여부가 자율성과 강제성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이는 현장의 노사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가 진행되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사안을 대하는 안이한 노동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생산성' 들먹이며 임금 삭감... 근로기준법 무력화 매뉴얼그렇다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노동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임금체계에 대해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편의지를 보이는 것에 비해 노동계의 소극적이고 더딘 대응은 많이 아쉽다. 지난해 통상임금 논쟁으로 시작된 임금체계 개편의 문제가 올해 중요한 노사의 의제라는 것에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나 신의칙에 의해 과거의 상여금에 대해 체불을 물어서는 안 되고, 회사의 경영상황에 따라 그 지급을 결정할 수 있다"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매우 충실'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이 문제가 법 개정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모두 예측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판단에 걸맞은 사업과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
금속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사용자들의 임금체계 개편 의도에 맞서 단협을 지켜내고,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과 방침을 세웠지만, 전체 노동자의 임금이 삭감될 위기에 대한 투쟁과 사업계획은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조직되지 않은 90%의 노동자들과 손잡고 정권과 자본의 임금삭감 의도를 막아내고자 하는 의지가 사업계획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도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기업들의 개악안이 나올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공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임단협을 치러도 본전 이상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 되었다.
노동계가 온 힘을 다해 2014년 임단협을 치러낸다고 해도, 이대로 10% 조직 노동자들의 상여금과 수당을 지켜내는 것에 그치면, 90%의 미조직된 현장을 초토화 시키고 '귀족노조', '밥그릇 싸움' 논리로 밀고 들어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를 막아낼 수가 없다. 90%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켜내는 싸움에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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